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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대하여 무크, 작가(한국작가회의), 2015년 상반기 바닥에 대하여 한용국 바닥을 모르는 얼굴로곤궁이 닥쳐오고 있다 목도 없이 둥둥 떠다니며 바닥이 궁금한 얼굴이지만달의 어제를 닮아 있다다그쳐 오는 곤궁 앞에서어제에 적절한 밤이 아니어서곤궁의 안을 알지 못한다 나에게도 스며드는 힘이 있는가곤궁을 열어젖히면어느새 곤궁 속으로 들어가똬리를 트는 바닥의 잠 꿈 속을 들여다 보면바닥에 닿아버린 얼굴로어제의 달이 떠 있고새들의 발자국이 돋아나 있어잃어버린 물처럼 밤은 멀어지는데 바닥에게도 속이 있는지어제가 닥쳐오는 얼굴로잠이 곤궁의 뿌리를 쓰다듬고 있다 2018. 7. 2.
피망론 외 4편 계간 시와 산문, 2015년 여름호, 특집 피망론 한용국 다만 피망이 싫을 뿐이다. 피망만 아니라면 괜찮을지도 모른다. 삼킬 수도 있었다. 오래 쓰다듬어 줄 수도 있다. 그때 거기에 피망이 놓여 있지 않았다면, 피망을 집어들지 않았다면, 파라리 피망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갈 수 없다. 피망은 내 눈 앞에 둥둥 떠서 살아간다. 피망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것도 할 수가 없다. 피망이 원죄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는다. 무슨 피망 따위가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너무 피망에 너를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니냐, 충분한 의지가 있다면 그깟 피망 따위는 벗어던질 수 있다. 사실 내 삶의 대부분을 피망을 벗어던지기 위하여, 피망에서 달아나기 위하여, 피망에서 숨기 위하여 바쳤다. 어떤 이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 2018. 7. 2.
애인아 울지마 외 4편 시작, 2015년 봄호, 특집 애인아 울지마 한용국 애인아 울지마. 이제 어제 일이니까. 발 닦고 아무도 모르는 방향으로 돌아서서 기침해. 등 뒤로 흘러내리는 어두운 땀은 잊어버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거야. 낭만주의는 없다고 배웠잖아. 눈 뜬 채 물에 얼굴 담그고 심호흡 해봐. 미필적 고의 아니고 필연적 우연 아니고, 손가락 목에 넣는 일 따위 더더욱 아니지. 꺽꺽거려보면 킥킥대게 되. 발작적으로 웃는 꽃의 얼굴 생각해. 뿌리까지 저릿저릿한 날들이었어. 할 수 있는 일 따위 없었지. 허무주의 아니야. 단지 나열되었을 뿐. 순서없이, 쾌락없이, 그저 누군가의 곁에. 가갸거겨 나냐너녀. 오렌지와 설탕과 아무렇게나 펼쳐진 페이지가 된 거지. 낡아가는 눈 모으고 열심히 보는거야. 눈알 뒤편으로 사라진 세계.. 2018. 7. 2.
동인들 동인들 한용국 밤의 유리창 밖에는 검은 술들로 가득하고눈동자 속에는 종이 별의 시체로 가득 차 있었어 재가 된 얼굴을 바꿔 쓰지 않고검어지는 잇몸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둘러 앉아서 노래 속을 흘러가는 물이 되고 싶었을 뿐 전광판의 숫자들과 뿌리 뽑힌 신경들을 증오했으며가슴 속에 울음의 벽을 가졌으며숯이 된 나무를 씹을 줄 알았지 전염에 취약하고 감염에 강인했지만 가슴 속에 자라는 엄숙하고 장엄한 돌에돌려가며 입맞추고 낄낄거렸던 새벽의 우울한 서기들, 연금술사들, 끝내 사람을 향하는 아침의 마음들 유심, 2015년 2월호. 2018.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