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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혹은 강 영덕에서 안동으로 가는 길에 만난 강이다. 아니 저수지인가. 영원의 시작은 저런 빛일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저수지에 관해서 쓰려고 하다가, 영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이런 저런 일들이여. 영덕에서 나는 성인의 탄생을 축복하고 일을 돕느라 벌벌 떨었으나, 어떤 깨달음도 얻은 바 없었다. 그저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 본다. 멀어질 수록 흐려지는 구도, 구도라는 단어는 갑자기 이중적 의미를 얻는다. 멀 수록 흐려진다. 모든 것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느 시간에게서는 아주 흐려져 있을 것이다. 시간의 타자 그리고 진행중인 노화화 소멸에 대해서 생각한다. 정확하게 어느 시점을 기원으로 두어야 할까. 종교적으로라면 정말 영원의 어느 시점일 것이다. 아니 영원에는 어떤 시점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러면 나는.. 2008. 5. 19.
장성, 해인사 가다. (05년) 열차는 마악 기적을 울리며 장성에 도착하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낭랑하지만 금속성이 섞인 목소리로, 잃어버린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등 뒤에 쏟아놓고 있었다. 거기서 특히 잃어버린,이라는 단어가 목덜미를 확 부여잡는 느낌이 들었다. 잃,어,버,린...나는 서울을 떠나 와 지금 전라도의 장성이라는 낯선 역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잃,어,버,린..의 뒤에다 ‘삶’이라는 단어를 하나 덧붙였다. 그래 나는 오늘 철저히 서울에서의 삶을 잃어버려주겠다. 아니 나는 서울에서의 삶을 전생이라고 생각해 버리겠다.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플랫폼에 첫 발을 디뎠다. 나를 내려놓은 열차는 미련없이 종착역으로 떠나고 있었다. 멀어지는 열차의 꼬리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참혹한 전생이여 안녕! 나는 지금 장.. 2007. 12. 10.
옛 여행의 기록(05년 내소사행) : 부안, 내소사행, 용산역, 21시 25분 발차, 역방향 좌석 : 오규원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 : 쓰여지지 않는 텍스트 : 여백을 갉아먹고 사는 벌레들 : 손끝에서 꼬물거리는 이질감 그러나 친밀감 : ::::김제로 가는 열차와 하이트와 통에 같힌 오징어와 거울에 가득찬 허공과 :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못한다는 것을 케이티엑스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방향 좌석 : 지난 십년 동안 나는 역방향으로 퇴행/전진해 왔다. : 목적지에 도달한 뒤에도 끝내 자신이 온 방향만을 바라보면서 고집스럽게 앉아 있는 사내 : 반성이 반성을 반성하지 못하는 것처럼 : 아임 낟 고잉 애니웨어와 아이 윌 고잉 에니웨어 사이에 밤열차는 있다. 무중력의 어둠 속을 유영하면서 애니웨이 에니웨어 : 그러자 열차는.. 2007. 12. 5.
부재시편 9 성내역 5 - 부재시편 9 못다 푼 응어리처럼 낮 달이 떠 있다 돌을 던지면 깨진 자리에서 어둠이 흘러나와 그간 잘 있었느냐고 사람의 형상을 취할 것 같다 나는 물푸레 나무를 훑어 안부를 전한다 부풀어 오르는 기억의 환부 속에서 새는 낮달 근처를 맴돌다 되돌아 가고 플라타너스들, 이파리들 하나 둘 씩 떨어뜨리고 야윈 열매를 풍경처럼 매달 때 가슴 한 쪽을 덜컹덜컹 울려오는 순환선 어두워지는 강을 건너 온 열차는 언제나 다른 세상에서 오는 것 같아 열리는 문 외면하고 언덕 쪽 돌아보면 병원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볼록거울 하나 서 있다 그 속에 강을 막 등진 듯 껑충한 나무 한 그루 사람의 형상으로 팔 벌리고 서 있다 오랜만이라는 듯 한 번 안아보자는 듯 2007.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