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 해인사 가다. (05년)
열차는 마악 기적을 울리며 장성에 도착하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낭랑하지만 금속성이 섞인 목소리로, 잃어버린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등 뒤에 쏟아놓고 있었다. 거기서 특히 잃어버린,이라는 단어가 목덜미를 확 부여잡는 느낌이 들었다. 잃,어,버,린...나는 서울을 떠나 와 지금 전라도의 장성이라는 낯선 역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잃,어,버,린..의 뒤에다 ‘삶’이라는 단어를 하나 덧붙였다. 그래 나는 오늘 철저히 서울에서의 삶을 잃어버려주겠다. 아니 나는 서울에서의 삶을 전생이라고 생각해 버리겠다.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플랫폼에 첫 발을 디뎠다. 나를 내려놓은 열차는 미련없이 종착역으로 떠나고 있었다. 멀어지는 열차의 꼬리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참혹한 전생이여 안녕! 나는 지금 장..
2007.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