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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계간 [파란], 2017년 봄호 폐광 한용국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차리인 동네....가 아니었다. 강원도 정선군까지라면 이 가사는 어울리겠지만 사북읍 고한리에 이르면 달랐다. 복숭아꽃 살구꽃은 분명 어느 집 마당인가에 피어있었다. 하지만 꽃의 빛깔은 모두 같았다. 제 빛깔을 자랑할 여지도 없이 속잎이 올라오는 순간부터 검게 물들었다. 검은꽃이 가득 피어있는 동네, 개나리도 진달래도 검댕이가 묻어 제 빛깔을 잃어버리고 마는 동네가 바로 고한, 내가 살던 고향이었다. 모든 게 까맸다. 산도 까맣고 물도 까맸다. 석탄을 품고 있는 산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석탄을 캐낸 산이었기 때문일까. 어쩌면 여기저기 쌓여 있는 탄무더기의 빛이 어린 우리의 눈에 반사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녹.. 2018. 7. 2.
빗 속에서 중얼거리다 외 1편 웹진 [문화,다] 2018년 여름호 빗 속에서 중얼거리다 한용국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다옛 일을 생각하고 있다버스 색깔의 종류를 헤아리고 있다빗방울의 파문은 왜 원형일까가슴에 동그라미를 쌓아보고 있다기억은 어떤 도형인지 궁금해하고 있다지각을 걱정하며 전광판을 올려다보고 있다여인들의 미끈한 다리를 보고 있다노후를 걱정하고 있다아직은 안 늙었다고 자위하고 있다파문만큼 많은 우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출가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했다정류장도 진화하고 있구나 감탄했다언제쯤 버스를 기다리지 않을까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버스를 기다릴 필요없는 사람들의 차이를 생각했다먹구름이 하늘을 덮은 쇠항아리라던 시인을 생각했다나의 생계는 뜨거워도 내려놓지 못하는 쇠솥단지다 마르크스는 비 오는 날 민중을 걱정했을까 빗소리와 .. 2018. 7. 2.
2017 시산맥 봄호 계간평 - 시인이여 다시 기침을 하자 시인이여, 다시 기침을 하자 한용국 김수영은 썼다. “기침을 하자/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김수영, 눈) 기침은 몸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외부의 위협에 의지와는 관계없이 몸이 자율적으로 반응하는 발작적인 반응이다. 김수영은 그 몸의 반응을 의지적 행위로 바꾸어 놓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눈’ 때문이다. ‘기침’이라는 의지적 발작행위가 ‘시’라면, 그 ‘시’를 ‘눈’에 뱉어냄으로서 어떤 구원을 꿈꿀 수 있었다. 구원이 없어도 좋았을지 모른다. 적어도 ‘시’라는 행위는 시인과 시가 놓인 자리 그리고 시를 읽는 사람 모두를 잠시 멈출 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눈’은 시의 외부에 존재하는 영토인 동시에 시에 .. 2018. 7. 2.
명랑처방전 외 1편 월간 현대시 2017년 여름호 ---------------------------------------------------------------------- 명랑처방전 한용국 그러니까팔이 하나 더 자랐다는 건가요 흔적은 떼어내도록 하겠습니다그림자를 처방해야 할테니까요 인내와 졸음 사이에서 혹시 난간을 만나거든죄를 뒤집어쓰고 오로지 뒤를 보세요 하나 둘 셋이제 당신에게서인물은 사라지고 배경만 남습니다 다시 명랑한 하루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혀는 감추되 얼굴은 참지 마세요보이십니까저 나무들도 줄서서 웃고 있지 않습니까. ------------------------------------------------------------------------------------- 사이에서 한용국 차를 마시는 동안해가.. 2018.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