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115 파울 첼란, 게오르그 뷔히너 상 수상 연설 파울 첼란 - 게오르그 뷔히너 상 수상 여설 여러분! 예술은 꼭두각시 격이나 운을 맞추는 – 이러한 특징은 그리이스 신화의 피그말리온과 그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서도 밝혀진다. 무모한 것이라고 여러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예술은 이야기 거리가 된다. 감옥에서가 아니라 그러니까 어느 방에서 벌어지는, 우리가 느끼기에 그 사이에 아무것도 끼어들어 오지 않으면 끝없이 계속될 수 있는 이야기거리가 된다. 그 사이에 무언가가 끼어들어 온다 예술은 다시금 나온다. 예술은 게오르그 뷔히너의 문학작품 보이첵에서, 무엇보다도 이름없는 사람들에게서, 그리고 – 모리츠 하이만의 [당통의 죽음]을 비꼬는 말을 이리로 끌어 온다면 - 에서도 다시금 나온다. 이와 똑 같은 예술은 이 전혀 다른 시대에도 등장한다.. 2007. 11. 11. 박두진, 김두홍 좌담 중에서 김 : 요즘 젊은 시인들, 특히 신진들의 시에 대한 느낌은 어떻습니까. 박 : 자기 자신이 뭔가를 찾아야지요. 어떤 시가 자기에게 가능한가를 알아야지요. 시적 자아를 먼저 알아야 하고, 왜 시를 쓰는지도 알아야 되고, 시 자체가 자기의 스승이고 동시에 자기의 적이지요. 힘이 드니 까 적이 되지요. 그 적을 극복해서 자기와 시가 완전히 일치해야지 가 장 재밌고 자랑스러운 거지요. 그것 외에는 방법이 없어요. - 94년 시와 시학, 박두진과 김재홍 대담 중에서 2007. 11. 11. 김춘식, 불온한 비평 중에서 … 근대의 가속도, 진보의 패러다임 아래서 모든 신선한 존재는 ‘한줌의 위안’으로 타락하며 그러한 타락은 ‘모독’과 ‘오염’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불러 일으킨다. 정전(canon)이 모독되듯이 모든 책은 ‘오염’의 덩어리, 키치일 뿐이다. 폭풍 아래 흩어지는 잡동사니와 자신의 동일성을 지켜보고 있는 세대에게 근본적으로 주체의 정체성은 순결하지 않다. 그것은 무언가 다른 것을 모방하며 그리고 오염되어 있다. 이런 오염된 주체에 대한 자의식으로부터 역설적으로 그들의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하의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 김영승의 [반성]등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의식이 이러한 모독장한 존재의 자의식이다. 그리고 모독과 상처에 대한 인식은 이윤학의 내면 속의 폐허,.. 2007. 11. 11. 문학과 사회 좌담 중에서 여기에 일종의 가난의 윤리가 있다. 힘의 포기는 동시에 집착의 포기, 구걸의 포기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십 대가 된 황인숙의 ‘헐벗은 나무’는 지상에 매인 자에게 적용된 옛날의 탄성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그의 탄성이 현실로부터 튕겨나가 솟구치는 반동의 동력이라면, 나무는 지상적 속성의 일부를 탄성으로 변환시켜 내 보내는 데서 헐벗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때 헐벗음, 즉 가난함은 성스러움과 동렬에 선다. 현실의 더러움에 집착하지 않는 고결함 문학공간 좌담, 황인숙 시집에 대한 정과리의 평 중에서 문학과 사회 04년 봄호 강계숙 : 내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자면 ‘호모 비데오쿠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 호모 비데오쿠스가 시를 쓰는 시대가 된 것이 아닌가? 즉 목표도 없고 경험도 없고 그저 심심하고 지루해서.. 2007. 11. 11. 이전 1 ··· 20 21 22 23 24 25 26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