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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시편 5 부재시편 5 우리들의 바벨탑 라면을 끓이다가 쉬익쉬익 끓어오르는 양은냄비를 보다가 문득 엔터키를 누르고 싶어졌다 그때 우리들의 사랑은 끓는 냄비처럼 불온했으므로 숨막히는 고딕체로 서로의 가슴에 새겨대던 우리들의 바벨탑 뚜껑을 열어 라면을 넣으며 봉해 둔 마음까지 탈탈 털어넣는다 이렇게 삶은 덧없고 추억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데 저마다 밥벌이로 가족들에게로 애써 돌아서지만 몇 걸음 못가 구두끈이 풀어지는 사람들 감자탕 집은 한 구석이 텅 비어버리고 소주는 조금씩 쓴 맛을 잃어버리고 면발이 풀어지기 전에 스프를 뿌리고 익기를 기다려 계란을 풀어 넣는다 라면 끓이는 일조차 사랑이고 헌신이었던 아무도 추억을 염려하지 않았던 시절 김치통에 환하게 묻어 나올때 나는 돌아가 엔터키를 누르고 싶어졌다 어떤 여백도 다치지.. 2007. 11. 11.
부재시편 3 우리들의 식민지 부재시편 3 안개가 사망신고서에 등재되자 시나브로 시나브로 가을이었다 불꽃놀이의 기억을 휘두르기도 했지만 대체로 쓸쓸하다는 말이 실감났고 깨진 병을 들어 추억을 휘둘렀지만 아무도 뒤돌아보지 않고 묵묵하였다 일종전염병은 만성두통 만병통치약은 게보린 중얼거려보면 머릿 속 꽈리혹에 등불을 켜고 서로의 깊이를 가늠하던 날들이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가고 저마다의 얼굴크기만큼 하늘을 덮는 굿모닝, 이제 흐린 날씨의 얼굴로 등 뒤의 구름을 바라보며 악수하는 날들이 종량제 쓰레기더미 뒷켠에 쌓여갈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습관적으로 엔터를 치며 안개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고 몇몇은 건망증을 부끄러워하며 밤마다 자판을 두들겨 대겠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살 부벼대던 안개의 죽음을 보아버린 .. 2007. 11. 11.
부재시편 2 그대 몸에 꽃피겠다 부재시편 2 그대 몸에 꽃피겠다 믿을 수 없어도 눈물이 흐르고 옘병 지랄 아무리 퍼부어 대도 이제는 눈썹하나 꿈쩍 안 하는 그대 몸에서 꽃피겠다 잘 살어 잘 살어 창밖의 이파리들 불어갈 때 소주잔 철철 넘치는 손들마다 가시철조망으로 아프게 엮어두고 이제 꽃피면 설운 꽃 피면 환하던 꿈과 시리던 발걸음 가을 밤마다 꿈 속을 걸어다닐 때 징후도 없이 생리가 흐르고 때로 그리움도 안간힘이겠지만 지금 그대 몸을 쓰다듬는 손과 살아온 날들의 마지막 온기로 가쁜 숨 몰아쉬며 너네만 봐라 내 몸에서 꽃피겠다 울지 마라 내 몸에서 꽃피겠다 빙신, 저 죽는 줄도 모르고 사랑만 알아서 사람만 좋아서 햇살 속에 어느새 둥실둥실 떠있는 그대 몸에 꽃피겠다. 2007. 11. 11.
부재시편 1 텅 빈 중심 부재시편 1. 잠시 내린 비에 온 몸 젖었을 때 맨 살 부비며 오는 저녁이 있다 노래와 춤추는 날들에서 비릿한 죄의 냄새가 피어오르고 저기 저 나무들 젖은 나뭇잎 한 장에도 길을 버린 다 밤마다 어디론가 돌아누워도 숙면을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 돌아갈 곳도 떠날 곳도 없이 등 뒤에서 바람의 울음을 만난 다 열차가 환승역을 돌아오면 눈 속에 돋아나는 못다 핀 꽃 들 끝내 뚝뚝 져 내릴 때 강물은 멀리서 푸른 하늘과 만난다 긴 언덕길, 낙타의 등처럼 일렁이는 성내역, 회색 의자에 몸을 던지면 그대의 부재가 등 뒤에서 시릴 때 사소한 일에도 자주 놀라는 날들, 살아서 나, 그대를 온전히 만났던가 이제는 허공에도 경계가 보인다 화살표를 따라 무작정 걸어보면 거기서 마침내 환한 그대의 웃음 낡은 구두 .. 2007.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