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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저수지 혹은 강

by 목관악기 2008.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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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에서 안동으로 가는 길에 만난 강이다. 아니 저수지인가. 영원의 시작은 저런 빛일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저수지에 관해서 쓰려고 하다가, 영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이런 저런 일들이여. 영덕에서 나는 성인의 탄생을 축복하고 일을 돕느라 벌벌 떨었으나, 어떤 깨달음도 얻은 바 없었다.

그저 가만히 사진을 들여다 본다. 멀어질 수록 흐려지는 구도, 구도라는 단어는 갑자기 이중적 의미를 얻는다. 멀 수록 흐려진다. 모든 것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도 어느 시간에게서는 아주 흐려져 있을 것이다. 시간의 타자 그리고 진행중인 노화화 소멸에 대해서 생각한다. 정확하게 어느 시점을 기원으로 두어야 할까. 종교적으로라면 정말 영원의 어느 시점일 것이다. 아니 영원에는 어떤 시점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러면 나는 기원도 종말도 가지지 않은 주체가 될 수 있지만 다만 사유 속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영덕에서 안동까지가 사실은 생의 전부였다면, 내 삶은 영덕에서 안동까지 달려가는 버스안에서의 꿈이었을 것이자 꿈일 뿐이라면, 저 무성한 초록의 숲과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강은 무엇이지?  가까워질 수록 참혹한 것이 또 삶이다. 그러니까 나는 감각의 노예일 뿐이다. 아니 사실은 접속사의 노예가 아닐까. 초라한 문장을 끝없이 연결시키는. 고인채로 깊어지는 생활이 갖고 싶다고 쓴다. 사실은 너무 진공 속에 있다. 내가 가장 숨막혀 하는 시선의 진공 속, 끝없이 엇갈리는 시점들, 시점들 사이에서 피할 곳은 없어 그저 가만히 오늘은 사진을 들여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