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동승들
열차는 마악 기적을 울리며 장성에 도착하고 있었다. 안내방송은 낭랑하지만 금속성이 섞인 목소리로, 잃어버린 물건 없이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등 뒤에 쏟아놓고 있었다. 거기서 특히 잃어버린,이라는 단어가 목덜미를 확 부여잡는 느낌이 들었다. 잃,어,버,린...나는 서울을 떠나 와 지금 전라도의 장성이라는 낯선 역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이다. 나는 잃,어,버,린..의 뒤에다 ‘삶’이라는 단어를 하나 덧붙였다. 그래 나는 오늘 철저히 서울에서의 삶을 잃어버려주겠다. 아니 나는 서울에서의 삶을 전생이라고 생각해 버리겠다. 나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플랫폼에 첫 발을 디뎠다. 나를 내려놓은 열차는 미련없이 종착역으로 떠나고 있었다. 멀어지는 열차의 꼬리를 보며, 나는 중얼거렸다. 참혹한 전생이여 안녕!
나는 지금 장성의 ‘해인사’로 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인간시대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게 된 것이 그 동기였다. 브라운관 속의 야트마한 산골짜기에 초등학생도 되기 전의 어린 나이에 출가해 승려 생활을 하는 동승들이 살고 있었다. 그토록 어린 나이에 출가라니! 출가라면 세속에 살다가 세속에서 허무를 느끼고 진리를 찾아 세속의 인연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텔레비전 속의 동승들은 분명히 출가해 있었고, 승려 생활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도대체 저 아이들이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이번의 해인사 행은, 티브이의 인간시대에서 해인사를 보게 된 것이 동기였다. 나도 유년시절부터 소년시절까지의 십년을 절에서 보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출가와는 다른 생활이었다. 출가라니! 한창 부모밑에서 재롱을 떨고 투정을 부릴 어린 나이에,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절에서 살면서도 승려의 길은 내게 다른 생과도 같은 일이었다.
플랫폼을 나서자마자 그러나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그곳에서 동승들과 함께 살고 계신 무학스님이 일단의 아이들을 데리고 역에 마중나와 주신 것이었다. 사실은 나를 마중나온 것이 아니라 해인사에 상주하며 살고 있는 선생님을 마중 나오신 것이었다. 조금 수척해 보이는 스님의 껑충한 허리께 쯤에서 아기스님들이 눈망울이 영롱한 물방울처럼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나는 예법대로 스님께 불가에서의 합장인사를 올렸다. 그러자 스님과 아기스님들이 모두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왔다. 악수가 아닌 것이다. 내게 합장하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를 합창하는 어린 스님들을 본 순간, 나는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서울에서의 삶도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아마 누군가 나를 보았다면 서서히 투명해지기 시작하는 나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볼 수가 없었을지도 몰랐다. 다만 스님과 아기스님들 눈에만 보였을 것이다. 내 착각일까, 동승들을 촬영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진작가의 몸도 서서히 투명해져가던 것처럼 보였던 것은
비가 추적추적 내렸지만 습도가 높아 후덥지근한 날이었다. 어린 스님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즐겁게 졸랐다. 도시 아이들이라면, 처음 만난 낯선 어른에게 아이스크림을 조르는 천연덕스러움이 있을까. 잠시 갸웃하던 나는 역시 아직도 서울의 전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아이들은, 어린 스님인 것이다. 세속의 모든 인연과 형식에서 벗어나 구도의 길을 가는 스승들 아닌가. 그 앞에서 세속의 잣대를 들이대다니. 의심하고 경계하고 자신의 것에 악착같은 집착을 보이는 그 기준을 들이대다니. 편의점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샀다. 무려 마흔개다. 아이스크림 통이 순식간에 텅 비어 버렸다. 어린 스님들 벌써 모두 비우는 법을 안다,고 나는 혼자 말하고 혼자 웃었다. 스타렉스와 봉고차에 어린 스님들을 태우고 우리는 야트막한 산을 돌고 돌아서 해인사로 들어갔다. 여름 산의 푸른 녹음과 산자락마다 펼쳐 있는 논의 푸른 벼들이 비에 흠씬 젖은 머리칼을 바람에 빗질해 넘기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어린 스님들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 장난치며 푸른 웃음에 젖고 있었고, 그 속에서 투명해진 몸의 아래쪽부터 새롭게 차오르는 무엇을 느끼고 있었다.
해인사에 도착했다. 해인사는 사찰이지만, 절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다. 직사각형 모양의 집에 짧은 세로 통로를 가로질러 왼쪽에는 욕실과 화장실이 오른쪽에는 길고 큰 세 개의 방이 늘어서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독특한 것은 어느 쪽으로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전체가 열려 있는 것이었다. 무학스님이 직접 설계하신 것인데, 화재에 가장 안전한 구조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스님이지만, 아직은 유년기인 것, 끝없는 호기심과 장난은 그 무엇도 안심할 수 있게 하지 않았다. 처음 이 곳에 있던 어린 스님들은 ‘성철’이라는 법명을 가진 어린 스님과 그 외 다섯 명의 스님들. 서서히 어린 스님들은 늘어나기 시작해서, 이제는 마흔 다섯명에 이른다. 지금 어린 스님들이 살고 있는 이 건물도 무학스님께서 직접 도시를 돌아다니며 탁발해서 몇 년 간에 걸쳐 힘들게 지으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정말 천막 한 채가 전부였다고. 어린 스님들이 낭랑한 독경소리와 함께 저녁 예불이 끝나고 저녁 공양이 시작되었다. 반찬은 소박했지만, 어떤 스님도 반찬을 투정하지 않았다. 승려의 계율은 근본적으로 소식을 원칙으로 한다. 더 먹고 싶은 스님들은 스님에게로 와서 합장하셨다. 그러면 스님은 적당한 만큼의 공양을 더 얹어주고는 하셨다. 마흔 여덟명의 아이들에게 일일이 반찬이며 밥을 덜어주시는 무학스님은 끝내 몇 술 제대로 뜨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공양을 마치셨다. 그리고 나서 잠시 차를 한 잔 마신 뒤 취침시간, 어린 스님들은 모두 스님께 합장하고 두 방에 다닥다닥 누웠다. 그리고 밤이 깊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또 다시 예불을 드리고, 무학스님과 어린 스님들 모두 마당에 나와 풀을 뽑았다. 사찰에서는 이것을 울력이라고 한다. 모두 힘을 모아 일한다는 뜻이다. 일일부작이면 일일불식인 것이다. 그런 뒤에 다시 아침 공양을 하고 막 초등학생이 된 스님들은 학교 갈 준비를 서두른다. 이 모든 과정은 정말 어딘가 소란한 듯 하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듯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늘 그래왔던 듯한 익숙해 보인다. 일렬로 서서 통학버스를 타러 가는 어린 스님들의 까까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햇살은 세상의 어느 햇살보다도 가장 순수하고 아름답게 빛나는 듯 눈이 부셨다. 학교가는 어린 스님들이 떠난 뒤, 남은 어린 스님들은 앞마당에서 즐거운 놀이 시간을 가졌다. 어린 스님들은 컴퓨터와 오락 게임기와 연예인 흉내가 없이도, 정말 즐겁게 놀았다. 가장 자유로운 몸짓으로 환한 마음으로 뛰어 다니고 소리 지르고 노래했다. 그 다음은 선생님들과의 시간이다. 방에서 무슨 소리가 나길래, 무언가 하고 엿들어 보니, 비디오를 통해서 불교동화를 시청하는 시간인 듯 했다. 살짝 들여다본 까까머리 뒤통스들이 너무도 진지해 나는 슬그머니 문을 닫고 나왔다.
무학 스님과 산책하면서 사찰을 둘러 보았다. 법당도 아직은 가건물이다. 스님이 일승법계도를 설치하고 어린 스님들과 함께 도는 자리에 올라가니, 천하 명당도 이런 명당이 없었다. 스님은 꿈을 꾼 뒤 이 곳을 찾아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성철 스님이 환생하는 꿈을 꾼 뒤, 어린 아이와 인연이 되었고, 그 아이가 성철스님의 환생이라 여겨, 법명도 성철이라고 지으셨다고 한다. 스님은 일승법계도가 있는 자리에서 앞으로 환히 트이며 굽이치는 산굽이를 바라보면서 ‘전법’에 대해 말씀하셨다. 지금도 어린 스님들을 위한 요사채를 그 자리에 짓기 위해 탁발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몸이 많이 쇠약해 지셨다. “제 원은 이렇게 어린 스님들을 이 해인사에 천명을 출가시키는 것입니다. 모두 전생에 스님이었던 아기들이지요. 한국 불교를 위해 그리고 혼탁한 세상을 구원하는 큰 스승으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이 곳에 온 어린 스님들은 모두 부모님과 함께 왔다가는 어쩐 이유인지 떠나지 않는 아이들입니다. 저는 그것을 환생이라고 믿고 있지요.”
나는 떠나야 했다. 그러나 어쩐지 떠나기 싫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마음은 떠나올 때와는 너무 달라져 있었다. 떠나올 때 이미 참혹한 생은 한 번 지나간 것이다. 이제 열차를 타고 도착할 서울의 삶은 다음 생일 것이다. 그리고 어렴풋이 나는 그 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알 것도 같았다. 물질과 명예가 목표가 아니라 사랑과 구원이 목표인 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열차를 타고 가는 나는 서울이 가까워 올수록 서서히 환생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