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이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한참 지나고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 있는 그 공연을. 뭐랄까, 이제는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들의 공연
은 그 해, 그러니까 작년 11월의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하기
에 이르렀다. 거기에 더하여 인기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세
상에 믿기 어려운, 그러나 충분히 믿을 수 있는 결과였다. 게다
가, 애인인 김미연씨를 포함한 다섯 명은 모두 브로드웨이를일
주일간 다녀오기까지 했다. 대상에 따르는 부상이었다. 물론모
든 경비는 GM대우가 부담하는 파격적인 견학이었다.배아프지
않았냐고? 물론 배가 아프고 또 아프다 못해 방안을 나뒹굴 정
도 였지만, 나는 그녀들의 공연이 가져다 준 흥분과 감격으로
평생 보상받을 것이었으므로 그 정도 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본선진출을 가리는 공연은 그야말로 대성황이었다. 원장은 원
장의 캐릭터를, 로버트 앤은 로버트 앤의 캐릭터를, 허버트는
허버트의 캐릭터를, 레오는 레오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주었
다. 게다가 애인의 배역인 엠네지아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녀
들의 앙상블은 조화로웠고, 나름대로의 배역해석 또한 마찬가
지였다. 하지만 나는 공연을 보는 초반까지는 거의 팽팽한 긴
장감 속에 앉아 있어야 했다. 오오 그건 마치 애인이 아니라부
모의 심정과도 같았다. 게다가 엠네지아는 정말 어려운 캐릭
터가 아니던가. 극의 매듭이 그녀에게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
이 아니었다. 거의 초초초긴장 속에서 공연은 진행되었고, 나
는 도무지 팔짱을 풀지 못했다. 실수라도 한다면 어쩌지? 노래
와 연기가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어쩌지?정말
다시는 애인이 출연하는 공연은 다시 보지 않겠다고맹세할 정
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연습 때도 고생시키더니, 공연을 보는
일 또한 고역이었다. 가끔 티브이에서 보는 배우의남편들의인
터뷰, 그 얼마나 허울좋은 것인지,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었다
게다가 넌센스는 한국에서 여러번 공연된 바 있었고,그때마다
성황을 이루었다. 더구나 한국 공연에서의 엠네지아는,거의바
보천치 수준의 캐릭터였다. 흔히 말하는 꼴룡아 캐릭터였지만
애인은 꼴룡아가 아닌 캐릭터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대본연습
때도 그랬지만, 브로드웨이 원작 디브이디를 보게 된 후 더욱
애인은 확신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했고, 애인의 연
습도 보았으므로, 안심은 하고 있었지만, 무대 위라는 곳은 다
르지 않은가. 가장 중요한 첫 씬인 관객과의 퀴즈, 그리고 인
형으로 두 목소리를 연기하는 씬,이 특히 걱정이었다. 애인의
캐릭터는 일곱살쯤에서 지능이 멈춘 정말 아이같고 멍청한 구
석이 있는 캐릭터였다. 드디어 첫 씬은 시작되었고, 특히 떨리
는 인형 씬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팔불
출같지만, 나는 정말 놀라고 말았다. 그녀에게 그 정도의 잠재
력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장면이 끝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팔짱을 풀 수 있었다.
공연을 보는 내내 잠시 지난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녀를, 애
인을 처음 만나고, 얼마 후에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되서야 놀
라게 되었던 일, 그리고 마침 내가 발견했던, 씨네 21의 작은
공고인, 명계남이 설립했던 'ACTERS21' 아카데미의 의 장학
생 모집 공고에 응시하여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일( 참
고로 지금은 없어졌다. 배우부문과 가수부분 두 부문을뽑았었
는데, 각각의 학생의 교육에 든 돈이 육개월동안 이천만원이
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중의 한 선생님에게 발탁되어, 음반
취입을 위해 작곡가 사무실에 다니던 일, 그러다가 가슴을 키
우라는 소리에, 난 가슴을 키워가면서까지 티브이에 나가고싶
지 않다고 그만둔 일. 그리고 난 후, 노래방 근처에도 안 가는
애인을, 삼년을 쫒아다니며 빌던 일, 그리고 뮤지컬을 하겠다
고 결심한 후, 맨발로 전국무대를 돌며 공연했던 일,들이 정말
죽기직전의 삼십초처럼 선명하게 가슴 속에서 리플레이 되고
있었다. 물론,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애인 스스로 성장하
고 있었음을 애인은 내게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를 하는 나를 팔불출이라고 보겠지만.
공연이 끝나고 모두는, 정확히는 그 관객들과 아마 심사위원
까지도 완전히 미쳐버렸다. 당연한 일이었다. 배우들의 호흡
도, 배우와 관객과의 교감도, 거의 완벽에 이르르리만치, 뛰어
난 넌센스 공연이었다. 지금까지 본 공연 중에서 내가 아직도
최고로 꼽는 공연은 '지하철 1호선'이다. 나는 그녀들의 넌센
스를 공연 목록 2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 녀들이 본선에 진출
하리라는 예측을 했고, 또 그러길 간절하게 빌었다. 내 눈이틀
리지 않다면 당연한 일이었지만, 한국 사회는 철저하게 인맥
과 학연으로 얽힌 사회 아닌가. 더구나 이 쪽은 더욱 심한 곳
이기도 하지 않는가. 다행히도 그녀들은 한 달쯤 후에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애인은 기뻐했고, 출연했던 그녀
들도 기뻐했고, 나도 물론 기뻐했다. 내 기쁨은 두 가지였다.
내 눈이 틀리지 않다는 것(나는 내 '눈'만큼은 믿는다). 그리고
그 공연을 대학로 무대에서 다시 그것도 세번이나 볼 수 있다
는 것이었다.
대학로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나는 매번 가서 보았다. 정말 보
고 또 봐도, 볼 때마다 그 묘미가 달랐던 것은, 배우들의 역량
이리라. 공연마다 대성황을 이루었고, 때마다 관객의 반응은
절정에 이르렀다. 혼자서 다른 본선 진출작 몇 편도 보러 다녔
지만, 넌센스만큼은 못했었다. 그랬지만, 나는 '대상'은 짐작
하지 않았다. 본선에 진출한 여섯팀은 대상1팀, 금상 2팀,은상
2팀으로 결정되게 되어 있었다. 나는 금상쯤은 예정하고 있었
다. 아까 말했듯이 게다가 정규 대학도 아닌 사회교육원이라
예외적으로 참가가 결정되어 있었다. 이번 지원에서의 조건또
한 만약 이 팀이 본선에 진출한다면, 내년에 열릴 2회 뮤지컬
축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었다. 만약 진
출하지 못했을 경우는, 정규대학이 아니므로, 참가할 수 없다
는 결론이었다. 하지만 본선에 진출했으니, 후배들의 참가는
보장되었고, 대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아까의 이야기처럼
이 곳은 한국아닌가. 학연 지연 혈연이 난맥으로 얽혀 있는.
나는 일이 생겨 시상식에 참가할 수는 없었지만, 결국 그녀들
의 공연은, '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제 1회 GM대우뮤지
컬 페스티발 대학 축전의 대상,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그
녀들이 충분히 그 상을 받을만 했다고 생각한다. 많이들 울었
다고 했다. 나도 속으로 울다가 웃다가 했다. 이제 그녀들은모
두 졸업을 하고, 각종 오디션에 응시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그녀들 다섯명의 '넌센스'를 더 이상은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나는
그들을 불러모아, 대학로의 공연장을 빌려, 다시 그 넌센스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아니면, 그들이 모두 배우가
되고, 십년 쯤 경력을 쌓은 후쯤, 모여서 한 번 더 그들의넌센
스를 보여준다면 좋겠다. 그 아쉬움은 몰래 해 놓은 실황녹음
으로 생각날 때 가끔 듣고 있다.
애인도 그때 이후 일년 동안 여러 일을 겪었고, 레슨도 받으면
서 지내고 있다. 아직 한 학기가 남았지만, 여러 오디션에 응
시하면서 때로는 최종오디 션에서 떨어지기도 하면서 열심히
해나가고 있다. 결과는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설령 오디션
에 발탁되어 한 작품을한다고 하더라도, 그 후 사라지는 배우
도 있고, 늦게 되더라도 오래 계속해 나아가는 사람도 있는것
이다. 시인들도 마찬가지 인 것처럼, 요즘의 애인은 오디션
에서 떨어져도 그리 속상해 하지 않는다. 조금은 자신을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공연 후, 일년 동안의
다른 노력들도 그런 용기에 일조했을 것이다. 나는 즐거운 마
음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언젠가 누가 내게 말한 적이
있다. 큰 길 걸어야 할 사람은 조급해 하는 법이 아니다.라고.
성장하라, 김미연씨. 부단히, 온돌처럼. 이제 겨우 시작일 뿐
이다.
* 덧붙여!
요즘, 창조 콘서트 홀에서 극단 대중,이 공연하는 '넌센스'가
공연 중이다. 거기에 그녀들의 '넌센스'에서 함께 원장역으로 공
연했던 '박정희'양이 오디션에서 발탁되어 '원장'역을 열연 중이다.
나는 그녀들의 다음 공연들은, 무조건 응원하기로 했으므로 가서
보았다. 아참, 작년의 명지대의 '넌센스'에 참여했던
, '그녀들'이 궁금하시겠다.
작년의 명지대 '넌센스'의 그 배우들은, 각각 이름이 이렇다.
원장 - 박정희
허버트 - 전승혜
레오 - 황현영
로버트앤 - 이봉련
엠네지아 - 김미연.
뮤지컬을 보러 가실 때, 이 이름들 중 하나가 참여한다면 가서
보시길, 후회없을 것임을 보증하노니!
아, 그냥, 애인이 공연 중에 부른 노래 녹음 한 것 하나 올린다.
어차피 이 홈의 손님은 소수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