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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 전생(轉生) 사월 초파일 초파일에 조계사에 갔었다. 조계사는 종로의 인사동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통종파중의 하나인 조계종의 본산사찰이기도 하다. 조계사와 인사동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풍수지리설을 생각하곤 한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터와 사찰이 들어설 터가 따로 있다는 풍수지리적인 생각에는 적어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약 백미터를 사이에 두고, 종로 3거리와 조계사와 붙어 있다시피 인사동이 위치해 있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 것인가. 비록 도심이기는 하지만 조계사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여기가 도심이라는 것을 잊고 향냄새와 아울러 거목의 정취에 취하게 되는 일은 땅기운이나 풍속설에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사의다. 인사동은 또 어떤가, 조금이라도 한산한 인사동을 걸어다닐 때면, 가끔 그곳이 .. 2007. 11. 11.
쿤데라 데라 쿤데라 데라 도서관의 서가는 묘한 긴장과 안식을 준다. 나는 800서가 사이를 서성거리며, 1930년대 문학의 연구서들과 몇 권의 평론집 그리고 시집들을 내키는 대로 빼어 들고 서서 읽기를 좋아한다. 열람석은 좌석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데, 내가 그곳까지 책을 들고 가지 않는 이유는, 이상하게 그곳까지 걸어가는 동안 책이 식은 붕어빵처럼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붕어빵은 서서 먹는 것이 맛있는 것처럼, 서가에서는 책도 마찬가지다. 서가의 의자는 최대한 꽂혀 있던 자리에서 가까울수록 좋다. 그렇게 서서 읽는 수고, 혹은 힘들 때는 철퍼덕 앉아서 한 두 시간 보내다가 지칠 때면, 나는 이탈리아 문학이 있는 서가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보르헤르스를 비롯해서 독문학, 불문학의 서가들이 곁에 모여 있다. 그곳을 서.. 2007. 11. 11.
성내역에서 브라우저의 창을 열어놓고 글을 쓰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막 저무 는 저녁과 자동차의 소음, 멀리 산을 오르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쓰 고 있다. 그리고 창밖의 어둠과 너무나도 대조적인 형광등 불 빛아 래, 앉아 있다. 이 글의 제목은 성내역에서,라고 붙였다. 물론 여기 는 성내역이 아니다. 다만 성내역에 잠시 내렸을 뿐이다. 그것도열 차가 지나가는 한 구간 사이를 서성였을 뿐이다. 오늘 강의는 발표수업이었다. 김용택의 시 '사람들은 왜 모를까'와 조 은의 시 '꽃은 일찍 썪는다'를 지난 월요일에 제시하고, 자신의 체험과 관련하여 감상을 써오는 것이 과제였다. 다행히 성의 없는 발표는 하나도 없었다. 아예 안써왔을 망정, 발표한 학생들은 너무 도 성의를 다해 주어서 좋았다. 제시한 시를 열 번, 스무 번 읽.. 2007. 11. 11.
모텔 캘리포니아 며칠 전 잠들기 전에 뭐라고 중얼거렸는지 생각났다 그냥 이대로 잠들었다가 아침에 깨어나지 않도록 해 줘, 그걸 떠올리자 나 자신이 끔찍하게 싫어졌다. 어떤 식으로든 내가 절망해 있기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그런 말을 중얼거릴 정도로 삶에 무책임해져 있었다니 그리고 내가 정말 계속 시를 쓸 수 있을까, 무서워졌다 깊고 어두운고속도로를 끝없이 걷는 일, 그게 삶인가 하지만 나는 이제 겨우 서른 둘인 것이다 세월은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빠른 속도로 지나가겠지만 좀 더 힘을 내서 걷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불빛도, 호텔 캘리포니아도, 없다. 이 길의 끝에는 절벽이 있을 것이고 그 아래 더 깊고 어두운 바다가 아찔한 높이에서 출렁거리고 있을 것이다 다만 그때 내가 날 수 있는 힘을 지니게 되었기를 바랄 .. 2007.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