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에도 내가 맡은 강의는 '문학체험과 감상'이라는 과목이었다. 말 그대로
문학을 학생들에게 체험시키고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게 강의의 주된
목표라서, 한 학기에 한 번 문학기행도 다녀오기도 하고, 또 다양한 매체를 통해
문학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시키는 등의 강의가 진행된다. 물론 나는 그리 부지
런하지는 못해서 많은 것을 해 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대충 문학을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철학적 주제들을 최대한 알기 쉽도록 여러가지 상황을 예로 들어가며 강
의하는 게 고작이지만.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좋은 문학체험이란 무엇일까. 직접 시든 수필이든 소설이
든 써 보는 것이다. 가장 단순한 형식이지만 어쩌면 가장 많은 것을 내포하고있지
않을까. 사실은 한 학기 내내 쓰고 읽고 토론하게 하고 싶지만, 아무래도 그렇게
만은 할 수 없어서, 한 학기에 한 번씩은 억지로 작문시간을 끼워넣어서 무엇이든
써보게 한다. 좀 더 욕심을 낸다면, 학기말 과제로 소설 한 편 써보기 등을 하고싶
기도 하지만, 교양학점인 까닭에 너무 많은 과제부여는 오히려 흥미를 반감시킨
다는 생각에 그렇게까지는 못하고.
하여, 지난 주에는 서정주의 국화꽃 마을로 답사를 다녀왔으니, 오늘은 작문을 시
켜보아야겠다고 수업계획을 세운 차에 마침 첫눈이 서울에 내릴거라는 예보를 접
했다. 그래, 오늘의 백일장 주제는 첫눈, 이라고 정하고 학생들에게 리포트용지를
나누어 주고는, 칠판에 두 가지를 썼다. 첫 눈, 또는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써
볼 것. 잘 쓴 학생에게는 시상도 하겠음. 아무래도 가장 재미있었던 이야기를 가
장 잘 쓸 수 있을 것이므로. 수의예과도, 경영학과도, 기타 공학계열 학생들도, 아
남학생들에게 금기를 제시하기도 했다. 군대이야기 쓰질 말 것, 특히 군대에서 축
구한 이야기는 더더욱 쓰지 말 것.
약간의 수런거림 후, 강의실에는 서서히 적요의 기운이 차 오르기 시작했다. 시
험용답안지를 앞에 두고 모처럼 기억을 더듬어 가는 학생들, 벌써 떠오르기 시작
했다는 듯, 한 줄 두 줄 써 내려가는 학생들, 아예 쓸 생각은 않고 추억에 빠져 흐
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학생들, 나는 문예지를 펼쳐서 한 페이지 두 페이지 넘기
고 있었고, 고요한 가운데 약간의 기침소리와 볼펜 소리만 들려오는 강의실은 온
풍기 탓에 적절히 따뜻했고, 내가 잠시 학생들의 적요를 바라보느라 고개를 돌렸
을 때, 정말 창 밖에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이 영원
같았다. 기억을 더듬고 있는 학생들에게도 그러했을까. 아주 잠깐이었을지라도
첫 눈이 내리는 작문시간,
고개 숙인 학생들 옆에 수만송이의 앙증맞은 연꽃이 둥둥 떠 다니고 있었다.
05년 12월 첫 날 종합강의동 110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