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라는 이름을 도둑질한 남자
한용국, 권혁웅 대담
권혁웅 시인이 재직하는 한양여자대학은 막 시작된 겨울의 두 번째 일요일 오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시인과는 본관 앞에서 약속이 정해져 있었다. 권혁웅 시인의 가을은 어떠했을까를 문득 생각했다. 그는 황금나무 아래서 어둠과 그늘의 알 빚기를 마친 참일까. 본관 커피숍 안에서 권혁웅 시인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이재훈 편집장과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권혁웅 시인의 연구실로 발길을 옮겼다. 연구실은 아담하고 정갈했다. 거기서 그의 성격을 볼 수 있는 듯 했다. 책상과 컴퓨터를 제외하고는 사면이 서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시집이며 연구서들이 항목별로 분류되어 있어 도서관의 작은 서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권혁웅 시인이 손수 탄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녹음기를 켰다. 그와 술을 마시지 않고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실로 처음이었다. 그런데 뭔가 연구실이 좁게 느껴졌다. 아, 내 옆에는 왼쪽에는 여우가, 그리고 오른쪽에는 코끼리가, 악어며 코뿔소를 데리고 간이 침상 위에 앉아 있었다. 이런 이런, 나는 누구의 질문을 대신하는 것일까. 우선 근황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한용국 : 근황은 어떠세요?
권혁웅 : 이제 막 종강을 했으니 겨울방학을 잘 보내야죠. 현재 쓰고 있는 신화에 관한 원고를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올 여름에 출간할 계획인데요, 마지막으로 다듬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신화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신화의 정신분석이라는 테마로 글을 썼습니다. 또 그간 썼던 평론들을 묶어서 평론집을 출간할 생각입니다. 시집은 내년에 낼 예정입니다.
한용국 : 그 밖에 다른 계획은 없나요?
권혁웅 : 아직 기획 단계일 뿐인데……(웃음) 다음 학기에 시론 수업을 두 군데서 해야 합니다. 그 강의록을 묶어서 시 이론서를 쓸까 생각중이에요.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시론 서적은 신비평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지요. 웰렉과 워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