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로서의 분열과 싸움, 이창동, 조선희 대담
조선희 : 제가 지금 신인작가잖아요. 근데 정말 신인작가라는 건 정신분열의 다른 이름인거 같아요. 사회적 냉대, 시스템의 냉대에 시달리다 보면, 끊임없이 내가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 그걸 사회에 납득시키기 전에 내 자신에게 납득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잖아요. 그 내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든 거 같아요. 또 내가 소설을 쓰는 재능은 없을지라도 이유는 있다는 걸 자신한테 납득시켜야 하는데, 가장 절망적일 때는 그 이유가 생각이 안 날 때예요. 선배는 그런 신인작가 시절을, 소설가로서, 영화감독으로서 무려 두 번이나 했잖아요. 이 신인작가에게 뭔가 용기를 주는 얘기 해 주실거 없어요?
이창동 : 전혀 도움이 안되지. 어떤 누구의 경험도 도움이 안되요. 혼자서 해결해야지. 절망을 좀 더 해야해. 가혹하게 이야기하면, 절망을 아직 덜 했구먼.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설득한다고 했잖아. 무가치한 존재라는 걸 받아들여야 돼.
조선희 : 그것까지 받아들이고 나면 쓸 기력이 없잖아요
이창동 : 절망을 하고나면 할 일이 쓰는 거 밖에 없게돼요. 베스트 셀러를 쓰려고 하니까 그렇지. 무인도에서 구원의 글귀 한 구절을 써가지고 병에 집어 넣어서 코르크 마개를 닫고 바다에 던지는 심정이 돼야 해. 누구 하나라도 이걸 주워서 봐줬으면 좋겠다. 에서 시작하는 거 아닌가? 무인도에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걸. 이 체험을 수기로 써서 베스트 셀러가 돼서 비단옷입고 진주 목걸이하고 그런 거 상상하면 미치지
조선희 : 신인작가가 자기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다 보면 조급해 지잖아요. 그런데 <초록물고기>는 데뷔작으로서 그렇게 조급하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그건 뭘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창동 : 무슨 이야긴지 정확히 이해하겠는데, 한 가지 납득이 안 되는 건, 지금 조선희씨 이야기 중에, 뭐라 그럴까, 세속적 잣대의 용어가 섞여 있어. 작가는 작가지, 신인작가라는 말은 없어. 그건 저널리즘 용어라고, 난 열두 살에 이미 작가였다고, 그전엔 화가였고, 내가 글을 쓰면 이미 작가예요. 신인작가, 추천작가, 무슨 수상작가, 이건 그야말로 세속적인 거라고. 또 시스템으로서의 냉대, 인정 이런 것들도 세속적 가치라고, 요즘 예술가 찾기가 어렵다는 말들 하잖아요. 세속적인 가치가 아닌 자기 내적 충동, 내적 가치로 창작을 하는 예술가를 만나는 게 어렵다는 얘기같아. 보면 알거든. 예술가의 폼을 내는지 진짜 예술가인지.<초록물고기>때? 말할 나위가 없죠. 그때 경험했던 냉대와 쪽팔림이라는 거. 나이도 사십이 넘어서. 그런 외로움은 내가 열두살 때 임면지에다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쓸 때나 큰 차이가 없거든. 그게 힘 아닌가. 영화 촬영할 때 어떤 장면 찍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와 이 장면 하나 몇만이다, 이런 얘길 덕담처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난 즉각적으로 의심을 해요. 이거, 없애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보여지는 것엔 뭔가 위험한 요소가 있다는거지. 소통 자체를 거부하는 건 아니에요. 교감하는 게 좋지. 그런데 그 방식이 중요한거지.
조선희 : 자기 재능에 절망한 적은 없어요?
이창동 : 그걸 나에게 물어선 안되지. 조선희 씨 왜 절망하는 데? 뭐 땜에 절망해? 스팀이 잘 안 들어와서 절망해? 볼펜이 잘 안들어와서 절망해. 마누라가 바가지를 긁어서 절망해? 결국 자기 욕망과 그 욕망으로부터 동떨어진 재능과의 싸움이지. 피흘리는 싸움. 그게 운명이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있군.
조선희 : 그런데 영화를 찍을 때마다 그 절망과 싸움이 늘 반복되나요?
이창동 : 그렇지. 그럼 술술 나오나? 안 나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