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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평론, 書架

이우환, 여백의 예술 4

by 목관악기 2007. 10. 29.

제 4 회


회화에 있어서의 추상성의 문제


회화에 있어서의 추상성의 문제란 미술 표현의 기원에 상응된다. 본다는 일, 그린다는 일 자체가 이미 추상화를 수반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오늘날 추상성의 문제는 예전에 추상미술을 이론화한 보링거가 전했듯이, 어디까지나 근대적 산물이며 그 규정성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산업 자본주의 발단과 그것을 추진한 부르주아들의 기치였던 자아 중심주의의 전면적, 전체적 시각 표현의 진로가 추상미술이 된 것이다. 화가들은 신이라든가 자연, 역사와 같은 모든 외계의 수용과 모방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표현의 모티프를 자아에 의한 아이디어와 개념에 두고 거기에 준해서 세계를 재구성한다고 하는, 능동적으로 존재를 만들어 내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이것이 근대주의이며 그 추상성의 기본적 입장인 것이다.
물론 일부 큐비스트나 칸딘스키 몬드리안 등의 산이나 나무 그림처럼 자연을 정리하거나 디포르메 하는 모습은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들도 오늘날의 이론으로는 간단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개념이 오히려 대상보다 우선되어 거기에 맞춰 대상물을 정이, 디포르메, 재구성했다는 견해조차 나오고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선택된 자아가 만들어 낸 아이디어의 개념화와 그 오토메이션화에 따라 세계를 조립하고 재생산하는 사회의 시각적 표현이 추상미술로서 퍼졌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20세기 중반까지 맹위를 떨치던 식민지주의, 제국주의처럼 거기에는 특정 개념의 확대와 증식이 가치가 되며 따라서 세계와 자아의 동일성이 진리였다. 이것이 발터 벤야민이 말하는 재현성의 비밀이며 복제 기술시대의 예술의 원리인 것이다. 거기에는 아우라(유일성)적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일성의 통념이 재생산되기 때문이다. 1960년대 리히텐슈타인의 만화확대라든가 워홀의 증식된 모나리자 그림이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도 그 점에 있다. 근래 회화의 대부분이 구상적 양상을 띠는 것이라 해도, 그 저변에는 근대주의에 입각한 추상성이 작용하고 있음을 간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념의 확대와 증식을 좀 더 확실하게 양식화할 방향성을 주장한 비평가가 그린버그이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멀어지면서 칸트를 자기류로 도입하여 이야기성과 이데올로기를 배격하고 회화를 투명성, 명증성의 형식으로, 다시 말해 순수한 평면 조건으로 성립시키려고 했다. 버넷트 뉴먼의 분할된 화면이라든가 프랭크 스텔라의 동일 패턴의 반복처럼 우연성과 불투명성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개념의 형식화를 전면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을 미니멀아트라 부른다. 도날드 주드의 말을 빌리면 그 밖의 아무것도 아닌, 극한적이면서 최저한의 것이 작품인 것이다. 이리하여 포멀리스트가 된 예술가들은 자아 형식의 극치까지 나아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파라독스 현상이 보이게 된다. 종래의 세계가 동일성의 환상에 뒤덮여졌듯이, 작품에서 의미와 지지체는 일체가 도어 있었지만, 포멀리즘의 극치에서는 의미와 지지체가 분리하는 상태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화가가 표명하는 의미는 공중에 뜨고, 예전에 그것으로 뒤덮여 있던 것은 주드가 지적하듯이 물체도 개념도 아닌, 뭐라 명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인가로 거기 존재하게 된 것이다. 지지체가 재료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명확한 존재이고 극한적 형태이면서 그러면서 아무것도 의미하지 못하는 무명성과 비개념성의 초라하고 뉴트럴한 벌거숭이 대상……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제목을 닮은 존재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으로 거기 존재한다는 것, 그러고 보면 작품을 작품답게 만드는 요인은, 암묵중에 전람회의 제도성이라든가 일정한 장소성에 의거하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라우션버그의 아무것도 그려져 있지 않는 캔버스의 전시, 에스워즈켈리의 단순한 채색판넬과 주변 공간 등, 그들에게 시선이 향해지는 것도 그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도르노가 말하듯 세계의 동일성 환상은 깨졌다. 조셉 코주드는 [한 개와 세개의 체어]라는 작품에서, 사전의 그 의미를 해석한 부분을 복사한 판넬과 의자의 사진과 의자 실물을 함께 진열함으로써 그들의 차이성을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많은 작가들은 조각이나 회화로 고정되어 있던 것을, 그 대좌에서 혹은 벽에서 끌어내려 해체하고 화랑이나 미술관에 뿌리는 해체작업 – 의미의 도금을 벗겨 내는 인스터레이션을 펼쳤던 것이다.
정치 상황에서도 예술에서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전체주의는 해체되었다. 각국 각층이 뒤섞이면서 뭐라 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으며, 새로운 존재 방식이 모색되고 있다. 세계는 종래 공동체 이념이라든가 동일성의 환상부터가 아니라, 각기 무수한 타자와의 상호관계로 성립하는 비동일성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닫혀졌던 추상성의 세계는 붕괴된 것이다.
되돌아보면 근대 추상주의는 내면의 표상화를 추구함으로써 현대 문명의 발달만큼 의식이 외화하는 장을 넓히고, 도시적이고 세련된 조형 세계를 추구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미셸 푸코가 논구했듯이, 배제와 차별과 디포르메의 폐쇄공간(감옥)을 만든 셈이 된다. 타블로의 실천이란, 화가가 지지체의 타자성이라든가 외부성을 무시하고 캔버스에 전체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모든 것을 개념 구현의 재료로 사용하면서, 완결된 자기 왕국을 전개하는 일이었다. 문화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추상미술이 싫다고 표명한 이면에는 이와 같은 외부성의 거부와 동일성의 전면화가 용납할 수 없는 미학으로 비춰졌기 때문이었음이 틀림없다.

현대미술에서 외부성의 회복은 절실하며 또 희망적인 이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외부성의 회복이 단순히 구상화로의 복귀라든가 추상성의 추방에서 얻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이다. 여기에 덧붙이고 싶은 것은 새로운 구상성의 발견과 그 전개 가능성은 추상성 못지 않고 어렵고도 비현실적인 수많은 문제를 끌어 안고 있다는 사실이다. 공동체와는 달리 타자들이 뒤섞여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국제도시와 고도로 발달된 하이테크놀로지의 지평이 오늘의 현실이다. 메커닉한 생활과 초고속 정보와 다양하고 분석적인 지식은, 비판과 반성의 여지가 있다곤 해도, 그 존재나 역할과 기능이 앞으로의 인간 생존을 규정하는 피할 수 없는 요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오히려 그 근대적인 지혜의 축적을 어떻게 활용하고 보완할 것인가가 과제일 것이다.
지구가 좁아지고 복합성에 의해,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가 되면 될수록 인간의 표현 방법은 단순하며 상호적인 행위성과, 메커닉하며 객관적인 기호성에 의해 추상화, 양식화, 코드화 되어진다. 이미 이런 것이 일상적인 리얼리즘이라 할 수 있다. 추상 개념은 대상의 디포르메로부터 멀어진 지 오래이며 칸딘스키가 제시한 자아원리적인 [점, 선, 면]으로부터 멀어졌다. 이미 그것은 현실 그 자체이며 사고와 행동의 사회적 규범인 것이다. 추상의 도달점인 미니멀 아트에 보이듯 물질도 관념도 아닌 것이 재료성을 넘어 극한적인 단위인 채, 작품의 구성원으로 일반성을 띠게 되었다.
현대미술에서 근대적인 재료와 현대적인 요소는 동거하기 쉽다. 바야흐로 재로로서가 아니라 구성원으로서 기능하듯이 같은 대상이라도 거기에 접하는 화가의 태도와 방법에 따라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 될 수 있다. 포멀리즘이나 컨셉츄얼리즘으로 해독된 물질과 개념의 분리, 차이성에서 오는 공백, 최저한의 패턴, 익명적이며 뉴트럴한 구조 등은 자기 한정과 외부환기를 위한 활성적 요소로 되살아 났다.
피에트 몬드린안의 도시와 화면과의 조응, 모리 루이스의 색채와 공백, 마르탄 발레의 색바탕과 필드, 안토니오 타피에스의 기호와 물질, 루치오 폰타나의 행위와 공간, 사이톤 부리의 낙서와 공백,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외부와 내부와의 대화에 의한 흔들림과 어긋남, 다니엘 뷰렌의 뉴트럴한 패턴의 설치와 외계와의 접합, 에노쿠라 야스지의 지지체와 침투, 윤형근의 설정과 방치, 그리고 내 그림에서의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과의 상호작용에 의한 여백 등은, 표현의 한계와 외계와 연계를 시도하는 새로운 추상화로 파악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표현과 비표현의 동거, 혹은 외부성의 수용과 대응이 중요한 이슈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화면이 미니멀 아트와는 달리 간결하며 비확정적이고, 관계항으로서의 미지성이 숨쉬고 있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종적인 자립성 보다는 횡적인 연대성과 규정되지 않는 무규정성을 내포하느니 만큼 이에 의한 초월성 논의도 가능해진다
이러한 화가들의 모티프나 작업은 다양하지만, 대개는 신체성을 매개로 하여 한정된 요소 바깥 세계와의 조응관계를 환기시키고자 하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캔버스에 터치하지 않는 부분을 도입한다든가 최소한의 기호로 자기를 절제하고 외계를 상기시키는 물질이나 형태를 도입한다든가, 대상의 어긋남이나 분해로 비대상적인 지평을 연다든가, 내외의 통풍을 좋게 하는 뉴트럴한 구조를 제시한다던가, 화가에 따라 그 방법과 실천은 달지만 자기 한정과 열려진 관계체로서 회화를 성립시키려는 자세에서 큰 공통성을 지적할 수 있다. 여기서 알게 되는 것은 위와 같은 요소들이 외계와 연결되는 직접성보다, 매개항으로서의 추상성의 암시세계라는 사실이다. 외계와의 관련이 중요하다고는 해도 표현기준이 바깥과 그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장으로서의 회화에는 좀 더 추상화된 것이나 암시적인 형태에 의한 매개와 비약이 요청된다. 작품 구성원은 회화의 비연속의 연속으로서의 매개와 비약을 담당하는 좀 더 현재적인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일상성에서 어긋난 외계와 연락하는 중간 장으로써, 그 타자성에 의해 반성과 사랑의 숭고함이 보증되기를 바라는 고도의 지성을 요하는 작업인 것이다.
오늘날 외계를 그대로 캔버스로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없다. 외계란 이미 알고 있는 데이터로서의 대상물이 아니며 불확정한 세계의 미지성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의한 표현 가능성이 주목 받고 있다고는 해도 현재로는 데이터가 재현을 넘을 방법은 발견되지 않았고, 그에 의한 행위를 외계와 관련시키는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이제부터의 회화는 외계와의 관련과 대응에 있어, 스스로의 타자성과 미지성을 환기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리하여 의식과 신체를 매개로 하여, 이쪽과 저쪽에 중개항을 두고 맺어 주는 건전한 창조력의 날개를 뻗는 것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각에 대해

근대주의에서의 시각이란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눈초리이다. 다시 말해 자기 의지로 대상물을 차정해 두고 그것을 본다는 의미이다.
르네상스 이후의 원근법 발달에서 알 수 있듯이 의지적인 시각주의는 객관성과 과학성을 표방하는 뇌 중심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것을 합리적으로 도식화한 사람이 데카르트이며 그에게 있어서 본다는 것은 에고에 의한 시각의 규정력을 지칭했다.
그런데 사실은 넓은 세계 앞에서 극히 한정된 눈은 역원근법적으로 열려 있다. 자기 눈 앞의 것보다 더 먼 것을 좀 더 널리 생각하며서 본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고 경험한 바이다. 물론 구체적인 대상세계에서는 가까운 것이 크게 보이고 저 멀리 있는 것은 작게 보인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분명한 일이지만, 눈의 한정성에 유래된 느낌(생각)이 그 반대라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최근 고대사회의 회화라든가 중세의 이콘, 혹은 동양의 산수화 등의 분석을 통해 역원근법 사고 방식이 재조명 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된다. 근대 원근법이라는 것은 인류 문화사 속에서는 오히려 특이한 시대의 산물이라고 하는 사람조차 있다.
오늘날, 시각이라고 할 때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말이 되어 버린다. 근대적인 원근법적 시각이란, 이쪽에서 저쪽을 일방적으로 포착하는 것을 지칭한다. 대상물 자체나 세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는 주체의 의식과 지식에 의한 규정력이 결정적이라는 얘기다. 본다는 것은 설정된 소재와 데이터로 조리된 텍스트와 마주하는 태도가 된 것이다.
이에 반해 역원근법은 반대로 저쪽에서 이쪽을 보는 형태이기 때문에 세계 쪽이 압도적으로 크게 다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자의 대상물에 대한 한정력은 애매하고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은 시각은 수동성이 강하며 우연성이라든가 비규정적인 요소의 작용이 두드러지기 쉬울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수동성과 능동성을 겸비한 신체적 시각을 중시하고자 한다. 인간은 의식적인 존재임과 동시에 신체적인 존재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재인식 한다면 어느 쪽이든 간에 본다는 행위가 일방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체는 내게 소속되어 있음과 동시에 외계하고도 연결되어 있는 양의적인 매개항이다. 그러니까 신체를 통해 본다는 것은, 보면서 동시에 보여지는 것이며 보여짐과 동시에 보는 것이 된다. 대상물이나 세계는 나의 이성의 반영이 아니며 외계성을 지니는 미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보는 것은 데이터화된 텍스트를 읽는 일이 아니며 타자와의 만남에 의한 상호작용이라는 얘기가 될 것이다.
미술이란 시각과 불가분한 영역이다.
그런데 신체적인 시각의 경시와 무시에 근거하는 근대 자아 중심적 시각주의는, 필연적으로 작품의 동일성과 개념성을 초래한다. 그리고 끝내는 작품은 세계와의 관게적 존재성을 부정당하게 되어 언어학이나 철학의 설명체로 타락하고 아이디어나 개념의 확인 이외는 그 어떤 시각의 힘도 환기시키지 않는 것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거기에서는 작품이 감성적이거나 애매하고 불투명하면 경멸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미 작품이 이성과 세계의 동일성을 나타내던 대상이던 시대는 지나갔다. 외부성을 부정하는, 배제와 차별하에 자기 내면의 재현화로 세계를 뒤덮는 제국주의적 시각은 해체되어야 한다. 나와 외계가 상호관계에 의해 세계가 공존한다는 입장에서 말한다면 작품 또한 일종의 차이성과 비동일성의 관계항인 것이다.
모네가 말했던 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를, 관계 개념으로 받아들인다면 닫혀진 자아주의에서 나와 대화가 가능한 열린 세계에 설 수 있다. 지식이나 의지 못지 않게 감각이나 체험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결코 내면성의 발로가 아니며, 신체를 통한 외부와의 접촉 가운데에서 일어나는 만남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지적인 개념성과 함께 감성에 의한 지각을 환기시킬 수 있다는 것은, 거기에 미지적인 외부성이 침투되어 있다는 이야기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는 자와의 대화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본다는 행위는 신체를 매개로 하여 대상과의 상호관계의 장에 사건을 불러들인다. 작품이 만남이 가능한 타자성을 띠고, 본다는 것이 양의성을 회복할 때 예술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다.

외계와 함께

외계가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은 그리스 시대 이래로 이어지고 있는 의문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연의 무질서론, 야만론도 태어났다. 감성이라든가 이성이 무의미한 소재들을 재구성함으로써 겨우 외계가 외계로 보이게 된다는 이론이 큰 흐름을 이루어 왔다. 모든 외계는 이미 역사화, 제도화 된 세계이다, 라는 시점도 같은 문맥에서 나온 것이다.
미학적 측면에서는, 헤겔이 자연을 이념적인 대상물로 끌어 올리려고 시도했으며, 칸트는 자연을 감성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물로 받아들이려고 했다. 특히 칸트는 높은 산이나 큰 파도에서 숭고함을 느끼는 것은 거기 마주선 인간의 감성의 반응력과 이성의 구성력에 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규정적인 <사물자체>개념에 보이듯, 어느 정도 외계를 인정하면서, 그러나 그 자체로는, 형성되어 있지 않는 것, 소재에 머물러 있는 것, 무가치한 것으로 다루는 태도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하이데거의 <세계 내 존재>라든가, 메를로 퐁티의 <양의성의 세계>와 같은 개념에 보이듯, 문맥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도르노가 제작현장에서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은 이성의 한계성이며 외계의 타자성이었다. 작품은 백퍼센트 능동적도 아니고, 백퍼센트 수동적도 아니다. 자연이라든가 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혹은 이성으로 동일성으로 규정하여 관리하려는 것은, 그 어느 쪽도 무모한 폭력이며 이간의 자살행위나 같다.
칸트가 말하는 자연의 불투명성, 무규정성이야말로 오히려 인간의 동일화 사고를 타파하고 어긋나게 해 주는 변증법적인 부정성이 아닐까? 외계하고의 무한한 교류에서 우연이라든가 애매한 요소가 작용하게 되어 비동일성의 작품이 성립된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시점을 인간과 자연 양쪽에 두면 어떻게 될까? 생산 개념의 우위성과 합리화보다 관계 개념의 우위성과 상호성이 부각될 게 틀림없다. 사고와 이성의 구성력에 앞서 직접적으로 반응하는 감각과 직관의 경험이 가르쳐 주는 것은 인간이 의식하는 존재임과 동시에 외계와 연결된 신체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신체는 외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표상작용을 행하는 이성에 앞선다.
높은 산과 큰 파도는 이성에 의한 미적 구성요소이기에 앞서, 직접적으로 신체에 침투해 오는 외부성이며, 그 규정성을 초월한 힘이 동양적으로 말한다면 심금을 울리는 것이다. 이성에 의한 구성이라든가 해석에 앞서 신체의 방향 작용에 의해 감동한다는 얘기이다. 이것은 결코 미라든가 숭고함이 대상물 자체에 내재되어 있거나 인간의 내면적인 상상물이 아니며 외계와의 만남에 의한 카테고리이며 현상학적인 관계항의 일임을 나타낸다.
이와 같은 입장은 인간의 프라이드나 문화적 차원을 끌어 내리는 태도로 비치기 쉽다. 그러나 이념으로 외계를 덮어버리려는 시도는 이제는 결코 열린 지혜라고 할 수 없다. 만남이 무한을 열고, 대화가 작품을 탄생시킨다. 제작에 있어서도 일방적인 이상의 발로가 아닌, 외계와의 상호 교류 작용이 비약성과 초월성을 보장한다.

여백의 예술

중간자

나는 고독하다. 어디에도 마음 놓고 쉴 수 있는 곳이 없다.
나는 결코 외톨이가 아니다. 다양한 관계가 너무 많아서 오히려 이도 저도 아닌 엉거주춤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이십여년간 거기에서 자라고, 그 뒤에는 일본에서 사십여 년 간을 살고 있다. 또 그간의 이십칠여 년을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를 뛰어 다니면서 살아 왔다.
그 탓인지 나에 대해, 한국에서는 일본화 되었다고 하고, 일본 쪽에서는 뿌리가 한국적이라고 하고, 또 유럽에 가면 저 녀석은 역시 동양인이라고 내치고 싶어한다. 마치 탁구공처럼 되받아쳐져야 할 중간자로 간주되어, 어느 쪽에서도 내부 사람으로는 인정하려고 안한다.
늘 힘든 지점에 서 있다. 즉 어디에서나 내쳐지고 위험분자처럼 간주되고 있다. 한쪽에서는 도망자로, 다른 쪽에서는 침입자로 공동체 밖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꼼꼼하게 관찰당하고 있다는 것은 이쪽도 필사적으로 상대방을 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일체로 간주 받지 못하고, 어긋나 있는 몫만큼 상대방이 잘 보인다.
거리의 역학이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이다.
살아가는 데 있어, 거리는 아픔이며, 힘이다. 보거나 보이고 있는 것은 무척 괴롭다. 그러나 이 거북한, 장소 아닌 장소야말로  살아 있는 세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한 군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마음먹고 움직이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 짓을 되풀이하고 있는 동안에, 사물을 공동체 밖으로 끌어내어, 끝없는 차이성으로 보는 버릇이 붙었다. 끊임없이 외부성에 노출되고, 타자성으로 살아가는 나날은 격렬하고도 슬프다.

베르가모의 해질 녘

베르가모의 성내는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하였고, 작은 광장에는 불이 켜졌다. 젊은 화랑주인인 마테오와 나는 카페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여느 때의 버릇대로 마테오는 금방 잰걸음이 되면서 괴테가 얼머나 베르가모 시를 좋아했었는가를 이탈리아어가 섞인 영어로 떠들어 댔다. 나는 반도 귀에 들어오지 않은 채 그의 뒤를 쫓아가면서 괴테는 이 광장에서 무엇을 보고 있었을까 여러 가지로 상상하고 있었다. 그러자 건너편 큰 나무 아래의 벤치에서 한 노인이 하늘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담배를 태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멈춰선 나를 뒤돌아보고 마테오는 빨리 가자고 말했다. 그때 저녁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다시 얘기를 시작했기에 나는 반사적으로 다문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얼굴을 종이 울리는 방향으로 돌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그리고 종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나처럼 얼굴을 돌렸다. 우리는 종소리가 다 끝나기 전에 다시 걷기 시작했지만 벤치에 앉아 있던 노인은 여전히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괴테는 이 도시의 해질녘을 좋아했을 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마테오에게 말했다.
그리고 몇 년인가 지난 어느 날 오후, 밀라노에서의 일이다. 눈이 돌 듯한 스케줄에 좇기고 있는 나를 보고 마테오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때 베르가모에서 당신은 나에게 멋진 시간이라든가 여유를 깨닫게 해줬죠? 기억나요? 요즘은 바빠지면 문득 그때를 떠올리죠. 종도 울리지 않는데 일순간 멈춰서서 말이죠. 심호흡을 하거나 천천히 담배를 태우죠. 그리고 다시 일을 시작하면 웃음도 절로 나와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 있던 나는 나의 하찮은 분주함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마테오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웃었다.

몸과 양복 사이

몸과 옷의 관계는 애증에 찬 것이다. 여름 해변가라든가 침대 속에서 사람들은 벌거숭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벌거벗고 있는 동안은 옷의 일 같은 것은 완전히 잊게 된다. 그때 옷은 옷장이라든가 벽에 걸린 채 인간하고는 무관계한 오브제가 된다. 그리고 보기에 따라서는 인간보다는 옷쪽이 끊임없이 몸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몸과 옷은 붙었다가 떨어지거나 하기는 해도 이혼과 완전 벌거도 가능하지 않다.
그런데 사람이 다시 옷을 입을 때가 되면 때와 장소를 그리면서 옷을 고르거나 코디네이터 하거나 거울을 보거나 한다. 자기 몸이 옷을 고른다고 하기 보다는 때와 장소가 옷을 고르게 한다. 물론 몸에 맞는다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옷이 몸에 맞는다는 것은 어떤 얘기일까. 어느 때 나는 우연히 양복점에서 양복을 한 벌 맞추게 되었다. 재단사에게 내 몸 사이즈를 잘 재서 꼭 맞는 것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완성된 것을 입어 보았더니, 바느질이 꼼꼼하고 깔끔하게 되어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이것저것 재단사 얘기를 듣고 몸에 익은 기성복하고 비교해 보는 동안에 맞춤복의 어려움을 깨닫게 되었다. 내 몸에 맞춰서 양복을 만들면 보기 좋은 양복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내 몸은 원래 스마트하지 않은 데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 점점 더 흐트러져 가고 있다. 그러니까 몸에 맞춰서 만들면 입기 쉽고 무리가 없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다지 멋지거나 아름다운 것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다.
이에 비해 유명 브랜드품은 아니라도 일반화된 기성복은 잘 고르기만 하면 말끔하고 모양새 좋은 것이 많다. 누구나 입고 있는 것이라 특징이 없다고 한다면 그 말대로지만, 몸하고 따로 노는 것 같아 보이지 않고 뉴트럴하다는 점에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통용이 된다. 형태나 치수가 평균치이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몸에 꼭 맞지 않는 경우가 있어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는 아니고, 유행에서 그다지 빗나가지도 않는다. 오히려 내 체형의 결점을 보완하고, 보편저이며 스마트해 보인다. 내 몸의 형태라든가 사이즈를 무시하고는 양복이란 존재하지 않겠지만, 몸도 또한 어느 정도는 옷에 맞춰가지 않으면 입었을 때 세련된 맛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