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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시, 청동

둥글게 외 1편

by 목관악기 2018. 7. 2.


계간 딩아돌하 2015년 가을호



둥글게 




한용국



해리 할아버지들과 샐리 할머니들 사이로

가을의 새 잎들이 툭툭 떨어져 내린다


햇볕이 검버섯들을 공평하게 말려주는

오후 네시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웅크리는 나무벤치들


둥글게 둥글게 짝 빙글빙글 돌아가며 

꿈을


입구로 들어와서 입구로 나가야 하는


여기서는 아무렇게나 지껄여도 된다

모두가 함부로 살지는 않았으므로


빛이 바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


서로 모르는 채로

해리 할아버지들과 샐리 할머니들이 낄낄거릴 때마다

가을의 붉은 잇몸이 합죽합죽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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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


한용국





붉은 해의 살점 한 근

빌딩 꼭대기에 매달려 있습니다


투신하기로 결심한 아이들이

도처에 다급합니다


많이 읽었지만

울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다른 존재가 되었습니다


피부 아래로 흐르는

불의 길을 마련한 것은 누구입니까


몸은 밤으로 순결하게 녹아내리지만

감정은 딱딱한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이번 생은 아무래도 몸을 잘못 골랐습니다


화기를 다스리며

오늘도 어둡고 끈적이는 골목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