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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원, 윤관영 시집 서평 - 사이, 겹눈의 시학 사이-겹눈의 시학한정원 시집 「마마 아프리카」 한정원 시인의 「마마 아프리카」는 다성성의 울림으로 가득 차 있는가하면, 정밀한 고요로 집중되어 있는 시집이다. 시집에 드러나는 다양한 목소리들은 저마다 다른 화법을 빌려 한 편 한 편의 시들로 산란하며 산포되는 동시에 시적 화자의 목소리로 수렴되면서 시집의 근본동력으로서 긴장과 밀도를 체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자서에 “십 년 동안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던 어머니, 바닷가, 사막, 박물관, 외국어를 이제 잠시 놓아준다.”라고 썼다. 시인의 말은 바로 그 다성성의 울림과 정밀한 고요가 병치되는 역설의 기원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볼 때, 「마마 아프리카」의 시적 발화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적 밀도를 의도적으로 해체하.. 2018. 7. 2.
홍신선 시인 시집 해설 - 무위의 빛, 허공의 시 홍신선 시인 시집 [직박구리의 봄노래](파란, 2018) 해설 무위의 빛, 허공의 시 한용국(시인) 1.이라는 책이 있다. 조선 후기의 거사 월창 김대현이 쓴 책이다. 열 살에 이미 시서를 통달할 만큼 명석했으며, 유가와 도가의 책을 섭렵했다. 마흔 살 이후 을 읽은 뒤 불교 사상에 심취하여 불서만을 탐독하였다. 임종 무렵에 자신의 다른 저서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과 만을 남겼다. 이 중 은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유교, 도교의 사상을 가미하여 꿈으로 인생을 설명한 글이다. 월창 김대현은 「자서」에 󰡔술몽쇄언󰡕의 뜻을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그 말이 자질구레하고, 좀스러워서 꿈 깬 사람을 대하여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뜻이다.” 고금을 통틀어 삶을 꿈이라고 말한 사람은 많았다. 부족한 식견이지만.. 2018. 7. 2.
계간 시와 사람, 2017년 여름호, 계간평 - 어떻게 함께 울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울어야 할 것인가 세계는 언제나 불가능한 낙원을 꿈꾸지만, 끝없이 실패한다. 불가능한 낙원에의 꿈이 실패한 자리, 시인들은 그 폐허를 서성거리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그 폐허에서 누군가는 외치고, 누군가는 한숨을 쉬고,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외치고, 누군가는 입맞추고 애무한다. 그렇게 남은 분절된 언어의 흔적을 시라는 이름으로 명명할 수 있다면, 우리의 현재는 그야말로 시의 시대가 아닐까. 낙원을 꿈꾸는 것조차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지난 해 4월 우리는 적나라하게 드러난 끔찍한 폐허를 목도해야만 했다. 김수영이 꿈꾸었던 ‘복사씨와 살구씨가 사랑에 미쳐 날 뛰는 날들’은 끝내 오지 않았다. 다만 악덕과 적폐가 증오에 미쳐 날뛰는 날들이 도래하고 말았으며, 거기에 맞서서 .. 2018. 7. 2.
2018년 모멘트 봄호 계간평 - 수난의 기억과 내적 초월의 길 수난의 기억과 내적 초월의 길 1 2014년 4월 16일 이후로 미안하다는 말은 이제 사적인 의미를 넘어서 공적인 언어가 되었다. 개인을 넘어 사회와 역사의 언어로 발전해 나간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에는 더 이상 이 사회가 병들어 가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이자 선언이 담겼다. 이 사회의 모순과 병폐에 대한 자기 반성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세월호의 희생자들을 넘어 자라나는 세대와 고통 받는 이웃에게로 흘러넘쳤다. 그 물결은 끝내 광장으로 모여들었고, 타올랐고, 끓어올랐으며, 세계를 바꾸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미안하다’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누가봄을 열었을까, 열어줬을까 허공에서 새어나온 분홍 한 점이 떨고 있다바다 밑 안부가 들려오지 않는데, 않고 있는데 덮어놓.. 2018. 7.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