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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윤회, 그 한 호흡지간

by 목관악기 2007. 11. 11.

    윤회, 그 한 호흡지간


살다보면 어느 시절에는 정말 특별한 공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게 어디든 간에 그곳은 어떤 시절을 이야기할 때 꼭 빼놓을 수 없는 중심이 되곤 한다. 그러나 나는 추억에 있어서는 공간만이 중요하지 그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람이나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리 정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던, 사람과 공간이 행복하게 기억 속에 존재해 있는 공간이 지금까지 내게는 몇 군데 있다. 그 중 하나가 윤회라는 전통찻집이다. 아니 몇 년 전부터는 막걸리며 전통주들도 팔고 있으니까 전통주점이라고 해야 옳겠다.

윤회의 지리적 위치를 생각하면 여자의 자궁이 먼저 떠오른다. 종합시장이라는 성남의 제 2 번화가, 온갖 주점들과 노래방과 게임방과 옷가게와 닭집과 단란주점과 룸싸롱이 열십자 거리에 빼곡히 들어선 그곳의 가장 중심이 되는 자리의 반지하에 인사동을 압축해 놓은 듯한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이 윤회다. 가게 이름은 불교에서 말하는 바로 그 윤회를 의미한다. 불가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6도를 윤회한다고 하는 데, 그 육도는 극락, 지옥, 인간, 축생, 아수라, 아귀라고 한다. 살면서 지은 업에 따라 그 세계를 돌고 돈다는 것인데, 불교의 궁극의 경지는 이 윤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 찻집 겸 전통주점은 노래방과 게임방과 옷가게와 닭집과 호프집과 단란주점, 룸싸롱을 거쳐 온 사람들이 2차로 오기도 하고, 여기서 만나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시고 2차로 노래방과 게임방과 옷가게와 닭집과 단란주점과 룸싸롱으로 가기도 하게 되는 걸 보면, 어쨌든 그들은 윤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윤회를 깊이 알게 되면, 더 이상 노래방과 게임방과 옷가게와 닭집과 호프집과 단란주점, 룸싸롱으로 윤회하지 않게 된다. 윤회에 드는 동시에 윤회를 벗어나게 된달까. 우리는 물론 윤회에 들었다. 굳이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니라도, 서울에 인사동이 있는 것처럼, 성남에 윤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성남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신기한 것은 거리에서 불과 반쯤 지하로 내려와 있는 공간인데도 거리의 소음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가게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순수 소나무 원목으로 꾸며졌다.  테이블과 의자는 소나무를 사용한 것인데 검고 반질반질한 윤기가 난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소나무를 직접 모두 불에 그을린 뒤 하나하나 사포로 마모시킨 정성에 십년의 세월이 버무려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 곳은 해인사의 팔만대장경각이 그런 것처럼, 반지하와 목재들이 어울림으로 실내는 여름에는 시원함을 겨울에는 따뜻한 온기를 머금게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선물 받은 꽃들을 거꾸로 걸어 드라이 플라워를 만드는데, 어찌나 온존히 그리고 예쁘게 마르는지, 마치 하나의 조각처럼 벽에 붙어 있는 것도 신기한 일중의 하나다. 누님은 그걸 나무의 힘이라고 늘 말씀하신다. 테이블 중 몇 개는 속을 파낸 뒤, 꽈리와 개나리 등속의 꽃들을 넣고 유리를 덮어 놓았는데 그 속의 꽃들도 거의 십 년이 지났는데도 모양과 색깔이 자연스럽게 우러난 그대로이다. 음식과 술을 내는 주방은 각종 흙으로 만들어진 풍경들로 장식되어 흐트러진 느낌을 주지 않고, 사람이 손으로 건드릴라치면 마치 아름다운 음악으로 주방을 감싼다.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들어오는 입구에는 다기와 초들을 전시해 놓았다. 그 다기와 초들은 물론 팔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전시용으로 더욱 알맞게 느껴진다. 천정에는 작은 네모난 등들이 걸려 있는데, ‘원융무의 차별무이’라는 글이 소박한 필체로 쓰여진 한지로 발라진 등이어서, 오래 쳐다보고 있노라면, 조용한 산사의 물풍지를 스치는 바람 소리라도 한 자락 들려올 듯하다. 양쪽 벽에는 승려들이며 전통예술가들이 직접 그린 진품 동양화들과 판화 조각들이 걸려 있어 운치를 더 하고 있으며, 방이 있는 가운데 벽에는 서예전문가가 직접 써서 기증하신 ‘보왕삼매론’ 액자가 걸려 있어 마음을 가다듬게 해준다. 전통찻집답게 양쪽 구석과 책꽃이 위에는 옛 그릇이며 생활도구들이 놓여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것들은 질서 없이 놓여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누님은 그것을 목재의 검은 윤기가 받쳐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신다. 사실 인사동의 어느 찻집을 가보아도 이만한 공간을 만나기는 어렵다.

나의 윤회와의 인연은 10년을 거슬러 올라간 93년에 시작된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집이 성남으로 이사가 있었다. 중학 2년에 속세를 떠나(?)대략 10여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무조건 쉬기부터 시작했다. 컴퓨터 학원을 다니는 것 외에는 대부분 집에서 책을 읽거나 자거나가 전부였다. 그렇게 몸을 좀 추스르고 나서야 나는 성남이라는 도시가 궁금해졌다. 산전체를 성냥갑으로 다닥다닥 붙여 놓은 것 같은, 옥상에 올라가면 마치 집의 해일을 마주보는 듯한 신기한 도시였다. 며칠 간의 산책 끝에 아는 순전히 간판 이름이 맘에 들어 그 반지하를 들어서게 되었고, 차를 시켰고, 그대로 윤회 속의 하나의 풍경이 되어 있었다. 녹차 한 잔을 시켜 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서 책도 읽고, 메모도 하고, 몽상에 빠져 있기도 했다. 모든 게 불안하던 시절이었고 스스로 극복해 내야 할 무엇이 가슴을 누르고 있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주인은 다만 미소로 답할 뿐, 나는 그 찻집의 풍경으로 두어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 날도 옆 테이블의 손님이 서 너 번은 바뀌도록 앉아 있다가 손 가는 대로 펴 든 책의 한 페이지에서 나는 극적으로 극복의 계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일어서서 목례를 하고 찻집을 나섰다. 그 후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고, 취직을 했다. 생활의 근거가 대부분 서울에서 이루어졌으므로, 잠시 성남의 거리는 내게 잊혀졌다. 물론 윤회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윤회에 들르게 된 것은 극적인 일이었다. 그 동네의 대부분의 가게가 그러하듯, 이미 주인이 바뀌었거나 사라졌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윤회는 내게 온전히 추억으로만 존재하는 장소였고 애인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애인과 그 거리를 통과하고 있을 때, 길가에서 무언가를 탁탁 털고 있는 여자를 보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그니, 윤회의 주인누나였다. 놀람과 반가움이 섞인 억양으로, 누나 아직도 계셨어요? 그랬더니 그니는 예전과 전혀 다름없이 웃으면서 그럼 어딜 가겠느냐고 반가워해 주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우리는 윤회에 들었다. 애인과 나는, 윤회에 들러 막걸리를 마시고, 이야기하고 웃고 싸우고, 연애하고 웃고 싸우고, 그러다 그곳의 손님들과 어우려져서 함께 마시고 이야기하고, 정말 윤회를 윤회하면서 윤회 속에 있었다. 마치 우리의 연애 또한 윤회의 한 자락 속인 것처럼. 그러다보니 어느새 우리는 윤회의 가족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누나에게 가끔 너무 미안할 정도로, 누나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누나와 함께 밤새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사랑과 삶을 이야기한다. 내가 윤회를 떠나 있었던, 한 시절, 이 곳은 성남시의 문화운동의 거점이었다고 한다. 찻집이 끝나는 저녁시간이면 하나 둘 씩 모여든 사람들이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술을 마시고 한 바탕 놀고 돌아갔다고 한다. 물론 그 중심에 누나가 있었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누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가끔씩 누나의 식견이 종교에서 정치까지 다양한 진폭으로 출렁거리는 데에 놀라곤 한다.

지난 번에 윤회에 갔었다. 원래는 ‘오늘 윤회에 갔었다’로 시작되는 글이었는데, 끝내 보름 나절이 넘어서야 완성하게 되었다. 누나의 지나 온 삶의 곡절을, 그리고 지금 삶의 신산스러움을 그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알고 있지만, 누나는 언제나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긍정하시는 편이셨는데, 그 날, 누나는 조금 힘들어 보였다. 그래 누구에게나 가끔 팝콘처럼 스스로도 모르게 잠시 속과 겉을 바꿔 입게 되는 때도 있는 법이다. 그 날 누나는 간간히 죽음을 이야기하시면서, 불가의 일화 중에서 한 호흡지간을 말씀하셨다. 부처가 물었다. 생명이란 어디에 있는가. 모두들 다른 대답을 했다. 그 중 제자 하나가 말했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있습니다. 네 대답이 옳다. 누나는 술을 마시면서 이 숨 내뱉지 않으면 죽는거야,라는 말을 자주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훈(누나가 아끼는 동생중의 하나다.)은 누나 자꾸 그러지마,라고 안타까워하며 신경질을 냈고, 나도 미연이도 다만 듣거나 고개를 끄덕이곤 했지만, 웬지 나는 무언가 알 것 같았다. 들숨과 날숨 사이의 한 호흡지간을 이야기하는 누나는 삶의 신산스러움을 토로하는 동시에 그 삶의 신산을 한 걸음씩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나는 조금 취한 누나의 한 옥타브 높은 목소리 속에서 새롭게 한 호흡지간을 오래 오래 생각하고 있었다. 누나가 넘어서는 길목에야 다다르지 못하더라도, 힘든 듯 안 힘든 듯한 세월을 나도 한 호흡지간으로 마음을 가다듬으며 건너가야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컴퓨터와 그리 친하지 못한 누나는 아마 이 글을 읽지 못하겠지만, 이 글로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쓰기 시작한 산문인데, 오히려 내가 위로받고 있으니, 약한 사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아 참! 한가지, 윤회에 들르시게 될 때는 지켜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아무리 취해도 바닥, 마루로 된 바닥이어서, 에 침을 뱉는 것은 절대 금기라는 것. 그것은 마루를 상하게 할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십년 정성의 공간을 모독하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 약간의 주정도, 투정도 받아주시지만, 절대로 그것만은 받아주시지 않으니까!

                                                                             6월 30 –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