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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참선

by 목관악기 2007. 11. 11.
禪체험에 관한 중얼거림




도올 김용옥,의 인도로 가는 길을  읽다가  마지막 권,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에서 느 껴지는 것이 있어, 기왕 내친김에, 도올의  금강경 강해와 벽암록 두 권까지 내리 읽어 치웠다. 도올은 거침없고 유려한 문체로 불교의 핵심원리를 설파해내고 있다. 해석학적 고증을 거쳐가면서 풀어내는 그의 방대한 경전지식에 대해서는 놀랄만할 따름이고, 연기론에서 제법무아에 이르기까지 그가 설파해내는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물론 교학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교학을   떠난 禪,의 원리에 있어서는 그의 해석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禪의 원리에서는 대부분 해석학적 엄밀성을 논구하고 있을 뿐, 그의 심득, 곧 마음으로 얻은 것에 관해서는 교묘히 비켜나가고 있었다. 도올이 그럴 때 쓰는 방법은 로고스 중심주의의 철학을 먼저 인용하고, 반로고스 철학들을 슬쩍 제시하면서, 성서 해석으로 빠져 나가서 종교의 보편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물론, 아하 고개를 끄덕일만한 대목이지만,  그것은 누구나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것이라는 혐의가 짙다.

어쨌든 도올을 통해서나마 나는 금강경을 이번에 처음 읽게 되었다.  금강경의 철저한 부정성에 관해서는 감히 내가 뭐라 말할 계제가 못된다.  하지만, 마음을 잡는 구절은, ‘과거의 마음도 없고 현재의 마음도 없고 미래의 마음도 없다’와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지어다’였다. 이 두 구절은 책 읽기를 마친 후 에도 내내 화두처럼 머리카락 속에 책갈피처럼 꽃혀 있다가 일상 속에, 날씨 속에, 선잠 속에, 일 속에 툭툭 떨어져 내리곤 한다. 그것들은 떨어져 내리면서 내게 ‘집착하지마라 집착하지마라’고 중얼거린다.   마땅히 어떤 마음에도 머무는 바 없이 내 마음을 바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동안 목마른 나는 마실 물을 밖에서 구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 마음 속의 우물을 흐리게 만들어왔으며, 더 끝없는 기갈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우선 내 마음 속의 우물부터 가라앉혀야 할 것이고, 그 물을 떠 마셔야 할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내게는 좌선의 경험이 있다.   처음 단전호흡의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것인데, 그것이 언젠가는 습관이 되었다. 약 한 시간 반 정도 가부좌를 틀고 단전으로 숨을 쉬면서 앉아 있는 일,  바르게 앉아 무엇을 하는 일이야 힘들지 않지만, 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는 일은,  정말 10분이 10시간처럼 느껴진다. 그 십 분이 지나면, 온갖 망상들이 폭죽처럼 머리 속에 터져오른다. 인간이 생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모두가 떠오른다고 보면 된다.  나는 그렇게 앉아서, 살인도 했고, 간음 및 섹스도 했으며, 무술도 했고, 가수,  대통령, 교수, 시인, 무엇이든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달콤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다. 그 망상들 사이 사이에 반성적인 의식이 끼어들기 때문이고,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고 나면,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돋는다. 마음이 단전에 있지 않고 머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오래 계속되면 상기가 오른다. 하루 종일 머리에 돌을 얹은 듯 무겁고 힘이 없게 된다. 어린 시절, 나는 이 단계를 넘지 못하고 끝내 상기병이 들어,   절에 있던 행자님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치료할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내가 택한 것은 절하기였다. 아침에 삼백배, 저녁에 삼백배, 정말 미친듯이 법당에서,  방에다 작은 불상을 모셔놓고 절을 했었다. 몸은 피로했지만, 정신은 맑아져서 좋았었다.

다시 참선을 시작한 것은,  대학 졸업 후였다. 집에서 대학원을 준비하며, 마침 어머님의 권고도 있고, 마음도 다스릴 겸이었다.   자리를 틀고 앉자마자, 여지없이 망상의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 번의 경험도 있고 하여, 들숨과 날숨에집중하고, 손에 든 염주를 돌렸다.  그러는 가운데 생각난 것이, 애써 망상들을 몰아내려고 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떠오르면  떠오르는 대로 두자.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지고, 서서히 망상들이 사라져갔다. 아하, 이제 되었다 싶었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가 있었다. 이제는 내 지난 날들이 끝없이 반추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네 살 정도의 무렵부터 그 당시까지의 과거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 그 후로 한동안은 망상 대신, 자서전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나는 쓰고 또 썼다. 떠오르는 생각을 막아봐야 소용 없는 일이었으니.   그렇게 한 달여쯤 지나고 나자,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과거의 일들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으면서, 마음이 편안해진 것이다.    아, 이제 뭔가 되었나 보다 했다. 하지만 그 다음의 일이 문제였다.   이제는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고 고요한데, 머리 속에서 끝없이 노래가 맴도는 것이었다.

뽕짝에서 내가 아는 모든 노래까지, 나는 앉아서 부르고 또 불렀다. 내 속의 디오니소스와의 재회였을까,  끝내 그 노래까지 지울 정도는 되지 못했다. 아마 그 과정은, 내 識을 지워나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거지만  ,(상술하지는 않겠다) 끝내 망아에 이르지 못하고 최후의 나와 만난 것이었겠다. 이후로  노래와 마음의 고요 사이를 오가는 날들의 연속이었고,   거의 석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그랬다. 그 좌선도 과정을 수료한 후로는 제대로 하지못했다. 나는 자주 사람들과 황음무도를 즐기게 되었으므로. 그 후로는 거의 하지 못했다가, 97년 무렵에 한 일개월 정도를 해낸 적이 있었지만, 다시 문학동호회의 사람들을 만났고,그때부터 사람이 내게 禪인 시절이 시작되었고, 일과 술과 사람과 글쓰기의 계속이었고  박사과정에 입학한 뒤부터 지금까지, 아직 저녁에 마음먹고 가부좌를 틀고 앉은적이 없다.   도무지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중얼거리고는 했다. 나는 오염되었다. 이미 너무 많이.

오랜만에 읽게 된, 불교 경전 탓에, 그 시절을 반추해 보게 되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하리라’ 그 궁극까지 도달할 수는 없겠지만 생각해 보면, 이제 집착하지 않고 바로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순간적인 여러 망상들은 다만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것일 뿐이다. 어떤 마음도 머무는 바 없는 것이다.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고, 끝없는 혼란 속에 마음을 두기를 거듭하겠지만, 늘 잊지 않고 머무는 바 없는 마음을 되새길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음 속의 우물을 찾아 갈 것이다. 그 물을 마시면서, 끝없는 부정의 길, 내면의 길을 걸어야겠다.   조지훈의 시구처럼, 그렇다, 번뇌가, 번뇌가 별빛인 것이다. 까지 써두었었다.   그리고 며칠 지난 오늘 다시 추가해 넣고 싶은 생각들이 있지만, 좀 더 완숙해 질 때까지 두고 보기로 했다. 금강경을 따라 걷는 길, 달빛이 비추는 자리마다 '白蓮' 한송이씩 피어오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