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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풍경에 대한 단상 1

by 목관악기 2007. 11. 11.



      시를 쓰는 일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의 첫걸음 혹은 고향에서 떠나는 길의
      첫걸음이라고 이성복은 그의 아포리즘에서 말하고 있다. 글쎄 고향이란   내
      게 어떤 의미일까. 아마 그것은 내게 늘 풍경으로만 남을 것이다. 그 갈피 사
      이사이에 사람들이 끼어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한 권의 풍경화집에   사람
      들이 끼어서 들춰보게 하는 것이다. 아니다. 어쩌면 풍경들을 들추다 보면문
      득 문득 누군가 나타나곤 하는 것이 아닐까.

       내 생애의 첫번째 풍경, 디귿자로 된 집이 떠오른다. 가운데  정원에는 포도
       넝쿨이 바둑판처럼 얽기설기 엮어져 있고, 우물 옆에는 키 큰 앵두나무가한
       그루 서 있다. 그때 양아버님과 양어머님과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농사
       를 짓고 계셨던 것 같다. 늘 저녁이면 논에서 개구리를 잡아  오시고는 했으
       니까, 어머니의 풍경은 잘 잡히지 않는다. 어쩌면 아버님과 나 둘만 살고 있
       었을 것도 같다. 그 집의 주인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셨다. 그  분들이 누구인
       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양아버님과 어떤 관계가 있으신 분이리라 짐작
       될 뿐, 그리고 자주 그 방에 들러 곷감이며 과자 등을 얻어먹었던 기억뿐

       여름과 가을 사이, 그러니까 여름이 지칠 무렵 나는 그 포도넝쿨과 앵두  나
       무 아래에서 최초로 착한 아이가 되었던 것 같다. 포도 한 송이,  앵두 한 알
       도 허락 없이 따먹지 않았다고, 우물 가에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칭찬하셨으
       니까. 그 포도들과 앵두 열매들이 생각난다. 그것은 어린 내가 시선이랄  수
       있는 무언가를 가지고 바라본 풍경이었다. 그 검은 과육들과 빨간 열매를나
       는 거의 매일 싫증내지 않고 쳐다보았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빨간점을무
       수히 찍어놓은 듯 앵두나무에 빨갛게 달린 열매들과, 마치 비밀스러운 이야
       기라도 숨어 있는 듯 무성한 푸른 잎들 사이로 주렁주렁 매달린 검은   포도
       송이들은 첫째로는 금단의 열매의 매혹을 내게 주었을 것이다. 손 대고싶으
       나 손 댈 수 없는, 그것은 내 것, 정확히는 우리 집의 것이 아니었으므로  따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겠다. 어린 마음에 먹고 싶은  마음
       이 늘 들었던 것은 당연했지만, 그걸 참는 내 모습에 대한 대견함과,   그 뒤
       에 당연히 따라 올 어른들의 칭찬을 예상해 보는 달콤함 또한 무시할 수  없
       었으니까.

       그것은  내게 최초의 아름다움과의 조우이기도 했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풍
       경은 손 내밀어서는 안될 것처럼 느껴졌다. 푸른 하늘과 흰구름과 빨간   열
       매를 홍역처럼 매달고 있는 앵두나무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바라
       보는 일 이외의 어떤 움직임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행여 어떤 움
       직임이라도 있을라치면 그것은 그 풍경을 까마득한 심연으로 사라져버리게
       할 듯한 두려움을 주었다. 그때 나는 어렴풋이 아름다움에 대한 외경같은것
       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나를 바라보는 느낌이었으며, 그 앞에서 나는 다만 자연의 일부일 뿐이었다
       포도밭도 마찬가지였다. 포도송이들은 마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가
       서로를 붙들고 있는 것 같아, 내가 그 속으로 한 걸음이라도 들어  설라치면
       주르르 떨어져 내릴 것처럼 보였다. 비밀의 정원이랄까. 그 속에는 어떤  다
       른 존재들이 그들만의 세계를 살고 있었고, 내가 들어가는 순간, 사라져  버
       릴 듯했다고나 할까.  앵두나무와 포도정원과 나, 그 앞에서 나 또한 하나의
       자연이었다. 아마 그때 나는 최초로 어느 시집의 제목처럼 내가 식물성임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사실 이 식물성은 나도 가지고 있던 이미지인데,  이
       제는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 시인이 먼저 발표해버렸으니)

       가끔 푸른 하늘을 보고 서 있을 때면 아직도 내 눈에는 그 앵두나무가 서 있
       다. 나는 아마 아직도 거기 서 있는 채로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지
       도 모른다.  그때 그 풍경의 옆구리에서 나는 다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기
       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