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용국 시인 산문, 幻

똥에 대하여

by 목관악기 2007. 11. 11.


       똥에 관한 추억 하나


       똥에도 추억이 있을까? 이제는 모든 화장실이 수세식화 되어 버려서
       물한번에 밀려나가는 그런 세상이지만 시골, 그것도 산중의  퍼세식
       화장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내게는 똥에 관해서라면 거의일가견이
       있는 축에 속하는 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거의 일상의 한부
       분이다 싶을 정도로 친숙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하루에 적어도  한
       두 번은 똥을 내려다보며 살았던 시절의 어느 겨울 이야기..

       **

       산중의 화장실은 마을처럼 똥차가 와서 퍼가거나 하는 일이 없기 때
       문에 아주 깊게 파여져 있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관광객들도 많이오
       가고 식구들도 많은 이른바 명찰이었으니 화장실 세곳중에서 계곡으
       로 나 있는 쪽은 그 깊이가 깊다못해 아득할 지경이어서 쭈그리고앉
       아 힘주어 한 덩어리 싸고 나면 한참 있어야 철퍼덕 하는 소리가 울
       릴 정도였다. 그렇게 깊어야 냄새도 덜 나고 또 계곡으로  밀어내는
       수고도 적었기 때문.

       그런데 문제는 겨울이었다. 가을까지는 똥들이 옆으로 골고루  퍼져
       흘러내리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유난히 추운 강원도의 겨울은사
       람들이 누고간 똥이 옆으로 밀려 내려갈 사이도 없이 얼게 마련이어
       서 겨울이 깊어질 무렵이면 어느새 그 똥탑은 사람들의 엉덩이를 위
       협하게 마련이었다. 익숙해진 우리절 식구들이야 이리저리 교묘하게
       앉아서 싸는 법을 터득하고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가끔 들
       르는 관광객들이나 손님들에겐 지저분하고 끔찍하고 불편한 것은 당
       연한 노릇이었다. 하지만 우리절 식구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
       니 그도 당연한 노릇. 봄이 오면 또 녹아서 흘러내릴게 뻔한 일이었
       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해 겨울 드디어 사고가 일어났다. 눈이 내리던 날이라
       절식구들 모두 나와서 눈을 치우느라 분주했는데 갑자기화장실에서
       아악!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웬일인가 싶어 허겁지겁  달려갔
       더니 신참 처사님 한 분이 화장실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오고 계신것
       이었다. 아직 물정 잘 모르시던 그 분은 눈치우다 갑자기 배가  아
       파와서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들어가 바지춤을 풀고 생각없이내려앉
       으셨던 것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누군가가 깨다 말아서 뾰죽해진
       바로 그 똥탑에 정확하게 엉덩이의 가운데 부분을 착지시키신 것이다.
       오 그 아픔이란 겪어보지 않으면 알수없는 것 아 마 어린시절 친구들
       에게 똥침을 맞아 본 기억이 있는 분이라면  그 아악! 하는 비명소리
       는 얼만킁의 처절한 비명인지 알고도 남으시리라.

       그리하여 비상이 떨어졌다. 그 일을 전해들으신 주지스님께서 온식
       구들을 동원하여 이른바 '똥탑 분쇄작전'을 명하신 것. 스님들과우
       리는 저마다 떨어진 헌 옷을 몇벌씩 껴입고 마스크를 두개씩에  머
       리에는 빵모자를 뒤집어쓰고 작전에 투입되었다. 두 사람이 하나씩
       모두 스무개 가량의 화장실 똥탑을 분쇄하는 임무를 떠맡은 것이다
       호미, 곡괭이, 삽, 쇠막대를 무기삼아 화장실에 들어가 키득거리면
       서 부수던 똥탑. 이리저리 똥탑의 파편들이 흩날리고 묻을까봐  서
       로 밀어내고. 내내 키득거리던 즐거워하던 그시절 '똥탑 분쇄작전'
  
       난 그때 그저 누렇기만 한 줄 알았던 사람들의 똥이 그렇게 다양한
       색깔인 줄은 처음 알았다. 빨간 똥, 파란 똥, 노란 똥, 시커먼 똥,
       사람 마음 따라 똥색깔도 다른 것이라고 나와 함께 똥탑을  분쇄하
       는데 열심이시던  스님의 말씀. 그 작전이 끝나고 모두 모여  라면
       으로 참을 먹으면서 서로 즐겁게 이야기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때 발견된 또하나의 사실, 절 뒷쪽의 화장실에는 남자 화장실과 여
       자 화장실을  막은 칸막이에 구멍이 뚤려 있더라는 것, 그 곳은 우
       리가 자주 가지 않던 화장실이라 아니! 그런 좋은 곳이! 하며 애들
       과 달려갔을 때는 애석하여라.  이미 그곳은 발견하신 스님이 판자
       로 못을 박아버렸으니. 그저 응큼한 호기심만 입맛을 쩝 다실  뿐.
      
       **
                  
       엊그제는 화장실 변기에 걸터앉아 똥을 누다가 이런 저런 슬픔들모
       두 똥과 함께, 힘들고 괴로운거 화난거 모두 함께 배설해 버리고싶
       다는 생각을 했다. 똥을 누고나서 오늘 내 고통은 어떤색깔인가 싶
       어 변기안을 다시 들여다 보았다. 그런데 아뿔사 내 습관은 이미일
       어설때 옆의 스위치로 물을 내려버린 다음이었으니. 몸엣것도 한번
       쯤 돌아보고 살 줄 알야야 마음엣것도 한 번쯤은 제대로 돌아볼 수
       있을텐데. 희한하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