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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홍상룡에 대하여 - 못다 핀 꽃한송이

by 목관악기 2007. 11. 11.


                                                                  홍상룡이라는 사람과
                                                                그 추억의 주변에 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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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어린 나이에 삶은 점점 믿을 수 없는 무엇이 되어간다. 라고
              첫 문장을 시작하고 나니 건방지다, 혹은 싸가지없다 라는 말이먼
              저 떠오른다. 하지만 웃지 마시라 이미 오래 전 열두 살 나이에,
              삶이 믿을 수 없는 무엇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었다. 그랬다 열두살
              어린 나이에 나는 이미 실존주의자가 되었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낯설어진 세계와 조우한.  

              그 해 겨울, 스님 손에 이끌려 내가 처음 그 방문을 열었을 때 그
              곳에는 내 또래의 아이들이 두 세 명이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
              보고 있었다. 그 눈빛들 사이를 머쓱히 앉아 있다가 그 아이들 곁
              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고, 먼길 달려온 어린 육체는 쉽게  잠에
              빠졌다. 그렇게 누울 때까지만 해도, 아니 스님 손에 이끌려 얼어
              붙은 길을, 험한 굽이길 죽을 고비도 넘기며, 차창에 달려드는 폭
              설 속을 아니 차에 올라타기전 서럽게 울던 어머님을 보았을 때에
              도 아니 조금 더, 태백산의 작은 절에서 며칠을 지내고 있을 때에
              도 아니 조금만 더, 어머님이 '너 절에 가서 살래?'하고 물으실때
              까지만 해도, 철없는 나는 아무 것도 몰랐었다. 무언가 결정 되고
              나자 그 이후로 어린 나이에는 느끼기 어려울 정도의 적당함을 수
              반하고 모든 일들이 너무 빨리, 갑작스럽게 이루어졌던 것이다.자
              신을 둘러싼 세계가 갑자기 그렇게 낯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밤중 잠에서 깨어나고서야 모든게 갑작스럽게 분명해졌다. 잠시옆
              을 돌아보았다.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이 쌔근 쌔근
              잠들어 있었다. 그곳은 집이 아니었던 것이다. 몇 번을 구불 구불
              돌아가야  문을 열 수 있었던 내 외딴방도, 덮고있는 얇은 담요이
              불도 푹신하던 그 이불이 아니었고 베개도 내 머리높이에  적당하
              고 부드러웠던 그 베개가 아니었다. 마치 티브이 화면속에 걸어들
              어온 것처럼.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왜 겨울에 나는 생일파티를해
              야 했는지, 왜 갑자기 생일에 어머님이 케익을 사주 신 것인지.왜
              방학하자마자 그곳의 절에 가서 한동안을 지내야 했는지.  어머님
              의 눈물은 무엇이었는지. 오 철없는 애새끼여,그때 나는 어머님을
              위로하기까지 했었다. '엄마 왜 울어. 나 좋은 데 간다고 했잖아.
              울지마' 그랬다. 그 모든 것이 늘 주인공을 맡곤하던 그래서 신나
              하던 학교의 연극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집을 떠나온 것이었고
              ,여기서 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던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종종
              꿈속에서 꿈이라고 알 수 있었던 몇 번의 경험을 이끌어내어 나는
              억지로 온몸으로 착각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 한
              구석에 내 책상이, 벽에는 내 가방이, 자주 다섯 시를 일곱시로착
              각하고 혼자 난리법석을 피우게 만들고는 하던 둥글고  큰 벽시계
              가 걸려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아무리 눈을감
              았다가 떠보아도 그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아이들은  쌔근
              거리며 잠들어 있었고 어둠 속에서 희부옇게  낯선 책상들이 보였
              고 밖의 불빛이 은은하게 비치는 한지가 발라진 옛날 싸리문이 보
              일 뿐이었다. 결국 밤새도록 눈을 떳다 감았다 하면서 아니야아니
              야 중얼거리면서 믿을 수 없어 하다가 종내는 훌쩍훌쩍 울음을 터
              뜨리고 말았다. 놀란 아이들은 모두 일어나 왜 그래 왜 그래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으랴, 그 아이들조차도 믿
              을 수 없었는데.

              그런 밤이 연 사나흘을 계속되고 나서야 나는 그 믿을 수 없는 일
              을 받아들일 수 있게 아니 서서히 잊을 수 있게 되었다. 그  아이
              들과 친해지고, 함께 뛰어 놀고 밤에는 깊이 잠들었다. 다시  오!
              너무도 철없는 애새끼여. 우선 방학숙제를 안 할 수 있게  되어서
              좋았고, 독자였고 늘 엄마의 잔소리와 회초리와 함께 살던 내게갑
              자기 많아진 형들과 친구들이 살갑게 대해주는 것이 좋았으리라.
              아니 무엇보다도 어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흘 울음
              가득한 밤만큼은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혹은 믿을 수  없다고 생
              각하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나도 모르는 내 어떤 의지가  그 시
              절로 돌아가, 밤새도록 눈뜨고 감기를 되풀이하다 결국 울고 있는
              한 소년을 만나고 돌아오게 하곤 했다. 속수무책인 그 의지. 이글
              을 쓰는 지금조차도 속수무책인, 열두 살, 그 때부터 나는 실존주
              의자였고 무언가 견딜 수 없을 때면 홀로 산길을 걸으며 고독하였
              다.    

              이렇게 썼다고 해서 내가 엄청 외롭고 불행하게 자라 났다고 생각
              하지는 말아주시길, 나는 그곳에서 오히려 집에서 받은 것보다 더
              자상한 보살핌을 받았고 형들로부터 구박과 사랑을 함께 받았고그
              받은 만큼 동생들을 구박하고 사랑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외로운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도 우리들은 모두  떠나온
              사람이라는 것을, 그러나  돌아갈 곳은 없다는 것쯤은 알고있었고
              ,그것은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이었으며 몇몇은 빈번한 가출
              과 붙잡힘으로 그 외로움과 싸우기도 했지만  우리는 대체로 평범
              하게 자랐다. 다만 다른 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있을 시간에 우리
              는 우리끼리 함께 있었다는 것이 다르다면 달랐을 뿐 한 방에  두
              세 명씩 짝지어 살면서 우리는 함께 숙제를 했고 놀이를했고 티격
              태격 싸움질을 해대며 자라났다.

              늘 함께였다. 숙제를 해도, 공부를 해도, 놀이를 해도, 청소를 해
              도, 늘 함께였다. 오락기구도 티브이도 없이 자란 우리들은  끝없
              이 웃기는 이야기들을 과장해서 해댔고 서로가 서로에게 까불어대
              고 낄낄거렸던 것 같다. 그것 말고는 그 산 속에서 달리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없었으니까. 여름이면 한 놈 찍어 물 먹이며 낄낄거리
              고(불행하게도 물먹는 주인공은 늘 나였다). 가을이면 머루다래따
              먹으면서 낄낄거리고, 겨울이면 눈썰매 타고 양말 축구 하면서 낄
              낄거리고, 개구리 잡아먹으면서 낄낄거리고 개구리 잡다가 스님한
              테 걸려 살생한 일을 참회하느라 삼천배를 하면서도 낄낄거리고,
              스님 다리 주무르면서 낄낄거리고, 벌로 법당청소 하면서  낄낄거
              리고, 학교 갈 때 버스 안에서 낄낄거리고, 줘터지고 줘 패고  싸
              우고 나서도 낄낄거리고(여기서도 줘 맞는 쪽은 불행하게도 또 늘
              나였다) 방바닥에 모여 이불 뒤집어쓰고 낄낄거리고 한 놈 찍어깔
              대기 벗기면서 낄낄거리고(짐작하시는 대로다. 울면서 바지  달라
              고 거기를 가리고 징징 울던 놈도 물론 거의 매번 나였다).  여자
              애들 이야기 하면서 낄낄거리고, 낄낄거리고 낄낄거리면서 살았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떠올리면 다시 한 번 그 시절로 돌아갈수
              만 있다면, 그 평화롭고 즐겁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는 그
              리움에 혼자 꺽꺽 울기도 한다. 그 날들, 그리고 그 낄낄거림들,
              나는 떠나온 후로도 한참 동안 누가 그 시절의 나 자신에 대해 이
              야기하라고 한다면 낄낄거림과, 산책과, 노래부르기 세 가지로 요
              약해서 말해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왜 그렇게 우리들은 낄낄
              거렸는지를 알게된 것은, 그 낄낄거림에는  그늘을 알게 된 것은,
              그 그늘은 어린 마음들로는 견딜 수 없었던 어떤 마음의, 어쩌면
              낯설음의, 외로움의 응어리 뱉어내기였음을 알게된 것은 세월도한
              참 지나 스물 일곱 해 되던 작년 봄이었다.

              오월이었다. 엘리어트의 사월처럼 그렇게 잔인하였다.모든 것들이
              믿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다시  내 의지가 가 닿을 수없는 영역
              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가장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으나 가장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누
              가 내 가슴을 들여다본다면 거기서 그는 폭풍을 만날 수 있었으리
              라. 그때 내가 데리고 살던 것은 울부짖는 짐승의 떼였다. 거리의
              모든 가로수들은 휘청거렸으며 건물들이 갑자기 일시에 나를 덮쳐
              오곤 했으며 지나온 길은 내 등 짝을 후려 갈겨대고 있었다. 그리
              고 무엇보다도 참혹했던 것은 내 주변엔 아무도, 아무것도 없었다
              는 것이었다. 설령 있다고 한다면 없었으면 하는 일들만 가득했던
              그 해 오월이었다. 그러하던 오월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노량
              진의 그 방문을 열었다. 어지러진 술병들 자욱한 담배연기,  끝없
              는 이야기, 웃음소리들, 아니 그 낄낄거리고, 낄낄거리고, 낄낄거
              리던 사람들.

              어린 날처럼 거기서도 그랬다. 모든 일들이 갑작스럽게  이루어졌
              다. 나는 갑자기 죽어도 헤어지기 싫을 사람들을 한꺼번에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좋았던 일은 거기서 나는 내  어린
              시절의 방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끝없이 이야기하고 끝없이 낄낄
              거리던 그 방을 말이다. 그 곳 노량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런 만큼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마음껏 떠
              들 수 있고 마음껏 술 마실 수 있었으며. 졸리면 구석에서 자면되
              었고, 책 읽고 싶으면 부엌 거실에 앉아 읽으면 되었고, 먹고싶으
              면 무엇이든 해 먹으면 되었다. 나는 누가 내게 자유란  무엇이냐
              고 묻는다면 노량진의 그 방으로 데려가 하루쯤 있게 해주고 싶을
              정도였다. 느껴라! 이게 자유다. 역설적인 자유 속에서 우리는 서
              로를 끊임없이 탐색해 대었다. 누구도 당구를 치러 가거나 화투패
              를 잡거나 하지 않았으며 다만 끝없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
              의 가슴 깊숙히 들어가 서로의 상처를 만났다. 그 때 서로가 서로
              에게 확인한 것은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가든지 삶은 저
              마다의 상처와 외로움과 응어리의 그늘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우
              리만의 언어로 그것을 검증이라고 불렀다. 검증되고나면 무작정서
              로에게 미쳤으며 검증되지 않은자 허위와 가식에 젖은 사람들은그
              곳에 머무르는 것을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곤 했다.  

              나는 그때 타인에 대한 진정한 배려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
              었다. 죽어도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것, 그러나 그 가려운 주변을
              말없는 손길로 쓰다듬어 주는 것, 그래서 가려움 지나 그 상처 주
              변으로부터 둥글게 서서히 상처에 새살 돋아나게 하는 것, 라면끓
              이는 일이며 술 사오는 일이며 설거지며 청소 어느것 하나도 타인
              에 대한 배려, 아니 서로에 대한 배려 아닌 것이 없었다.  그렇게
              모여 우리들은 끝없이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낄낄거렸다. 아니으허
              허허 웃고 으히히히 웃고 히히히히 웃고 깔깔깔깔  웃고 헤헤헤헤
              웃고 낄낄낄낄 웃고 피식피식 웃고 샐쭉거리며 웃고 헤벌레  웃고
              깨작깨작 웃고 나뒹굴며 웃고 웃고 웃었다. 그 끝없는 이야기와웃
              음들은 그때 저마다 지닌 상처와 외로움과 응어리의 환한  그늘이
              었고 바벨탑이었다. 이제 지난 일이라고 터무니없이 미화한다고생
              각지 말아주시길, 그때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도  절실하
              였다.

              그러한 절실함의 한가운데에 무진이 있었고 이야기도 절실함도 사
              무치면 그를 데리고 노래방엘 갔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들었다.'못
              다 핀 꽃 한 송이' 정말 기가막히게 음정도 박자도 안맞는,  그냥
              내지르듯 부르는 '언제 가셨는데 안 오시나'로 시작되는 그  노래
              를 들으면 우리 모두는 비감하였다. 유행가가 그의 노래에 의해서
              창을 넘어서는 순간이었다. 살아 있는 악기처럼, 온몸을 흔들면서
              ,아니 쥐어 짜, 내지르듯 부르는 그의 못다 핀 꽃 한 송이, 그 노
              래는 그의 어려운 삶이었고 문학에의 열정이었고 삼십대의 무서운
              집중이었고 동시에 우리들 모두의 어려운 삶이었으며 문학에의 열
              정이었으며 자신의 삶의 중심을 향한 집중이었다. 오래 잊고 있었
              던 그 노래, 이제 나는 노래 부를 일이 생겨도 그 노래만큼은부르
              지 않는다. 아니 부르려고 하면 이미 무진 그가 내 안에서 부르고
              있어서 내 성대는 경건함에 대한 예의로 움츠려 든다. 그랬다. 무
              진의 그 노래는 차라리 경건하였다. 나는 그렇게 미쳐가기 시작했
              다. 지난 일년 내내 거의 모든 주말을 그곳에서 보냈다.  아마 일
              년 동안 집에서 잔 주말을 열 손가락으로 꼽으라면 다 꼬부리지못
              할 정도로, 노량에 그 노량의 사람들에게 미쳐서 살았다.  나외의
              몇몇처럼 그곳에서 살다시피 한 사람도 있었고 숨어 있기 좋은 방
              처럼 잠시 숨어 있다가 영영 떠나버린 사람도 있었다. 그곳에서나
              는 내 어린시절을 다시 만났고, 내 외로움의 그늘을 확인 할 수있
              었으며 그 그늘 속에서 뒹굴면서  행복하고 행복하고 또 행복하였
              다.

              그렇게 못다핀 꽃 한 송이는 부르던 그는 정말 그노래의 제목처럼
              못다 핀채로 우리곁을 떠났고, 복사꽃 핀다던 노량은 이제 마치잃
              어버린 신전처럼, 완성되지 못한 바벨탑처럼 저마다의 가슴속에남
              았다. 그러나 그 못다핀 꽃 한 송이는 어쩌면 그가 우리 곁을  떠
              나는 바로 그 순간 활짝 피어올랐을지도 모른다. 그를  알고 그를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아마 그 꽃이 몇겹인지, 어떤 색을 가졌는지
              어떻게 피어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저마다의 사랑과 상처의크
              기로 가슴속에 피어올랐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리워 할 적마다
              그 꽃은 또 피어오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가슴 속에 수천 수만
              송이의 못다핀 꽃한 송이를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못다 핀 꽃한송이는 그러므로 꽃말이 없다. 나는 이제 감히 그 못
              다 핀 꽃 한 송이의 꽃말을 붙여보려고 한다. '아름답고 절실한타
              인. 삶에 대한 무서운 집중', 그리고 '환한 상처의 그늘' 이다.

              추억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만큼의 크기로 무섭고 그립고 절실하다
              .아무도 모르는, 혼자 지은 꽃말들, 아름답고 절신한 타인,  삶에
              대한 무서운 집중 그리고 환한 상처의 그늘이라는  말을 중얼거리
              며 겨울의 문을  두드리고 서 있는 지금, 아무래도 무언가 선득선
              득해 두드리다 말고 돌아보니, 놀라웁다. 이겨울은 환절기가 없다.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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