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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평론, 書架

이윤학, 오직 절실함

by 목관악기 2007. 11. 11.

  [계명대학교 문학포럼] 연설문 요지



이윤학, 오직 절실함




1.10代부터 마신 술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떠나 하숙생활을 시작했어요. 아기사슴이 그려진 새담요 한 장을 들고 하숙집으로 갔지요. 중학교 다닐 때는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을 했었지요. 막상 집을 떠나보니 이젠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나? 나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지요. 며칠 동안 말을 안 하고 산 적이 허다했지요.

하숙집엔 또래들이 여섯이었는데 나는 그들과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들은 그들끼리 무리지어 몰려다녔지요. 하숙집 뒤로는 리키다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었지요. 나는 리키다소나무 사이에 앉아 철길을 바라보곤 했지요. 기차가 스쳐지나갈 때 내 몸에서는 스파크가 일어나곤 했지요. 그곳에는 배나무 과수원이 숱하게 있었지요. 나는 배나무 과수원과 목장, 철길, 하천을 쏘다녔지요. 배꽃이 핀 과수원에 들어가, 달맞이꽃이 핀 하천에서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지요. 그로부터 나에 대한 연민이 싹트기 시작했지요. 나는 중얼거리는 대신 한 가지 열망에 집중했지요. 나는 언젠가부터 말로부터 상처를 받기 시작했지요.

나는 다섯살 무렵부터 말을 더듬기 시작했지요. 말을 더듬는 위집 형을 따라 말을 했기 때문이지요. 초등학교, 중학교 다닐 때에는 책도 못 읽는 아이였지요. 첫 말이 떨어지지 않아 얼굴만 붉히다 말았지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야 했는데 표를 끊을 때 말이 나오지 않아 애를 먹었지요. 발음하기 좋은 지명을 대고 표를 끊었지요.

나는 말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지요. 사람들을 보면 두려움이 생겨났지요. 나는 말이 필요 없는 대상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지요. 나는 결국 직설법을 버리게 되었지요. 말을 골라 쓰는 방법을 찾게 되었지요. 꼭 필요한 말은 종이에 적게 되었지요.




2. 짝사랑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은 소설 비슷한 것이었지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을 3번 읽고, 소설이 쓰고 싶어 구성도 없이 시작했지요. 1년쯤 되는대로 소설 비슷한 것을 쓰다 포기하고 말았지요. 붙임성이 없는 나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지요. 한 편도 완성한 작품이 없었지요. 욕심이 앞서 마무리를 할 수 없었지요. 매일 밤 문턱만 넘나든 셈이지요.

나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부터 짝사랑을 시작했지요. 하숙집 근처에서 자취하는 여학생이었지요. 내가 쓰는 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지요. 그녀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대상과 현상들을 쉴 새 없이 옮겨 쓰기 시작했지요.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면 느낄 수 없고 쓸 수 없는 것들이었지요. 내 상상에는 범위가 없었지요. 그로부터 15년 넘게 ‘짝사랑의 힘’을 빌어 시를 썼지요. 그동안 펴낸 5권 시집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그 힘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절실함은 점점 덜해갈 테지만, 앞으로도 ‘짝사랑의 힘’은 지속될 거라 믿고 있지요.




3. 묘사연습

대학에 들어가 충격을 받았지요. 도무지 묘사가 되지 않는다, 이걸 시라고 쓴 거냐, 기본이 안 됐다는 말을 들었지요. 그때부터 본격적인 묘사연습을 시작했지요. 하루에도 5~7편을 옮겨보았지요. 머릿속으로는 제대로 그려지는데 원고지에 옮기면 망가지고 말았지요. 오기가 생겼지요. 될 때까지 해보겠다고 각오를 다지곤 했지요. 선배들로부터 추천받은 보들레르, 이성복 시인의 시를 읽고 필사하기 시작했지요. 4년간 그 시집을 끼고 다니다 잃어버리거나 선물로 준 것이 족히 몇 십 권은 될 겁니다. 반복해 읽고 필사하다보니, 자연히 시를 다 외우게 되었지요. 외우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 입니다. 몸속에 그 시를 넣고 다니니 말입니다. 자신의 체질에 맞는 시인의 시를 집중적으로 외워보는 것이 시를 잘 쓸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4년 동안 시쓰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지요.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자가 되어 주었지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언제나 시쓰기는 게 우선순위였지요. 총장실 점거 농성을 할 때였지요. 우리는 거기 있는 복사기로 밤새워 빌린 시집을 복사했지요.


4.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일년간 빈집에 들어가 살았지요. 혼자서 밥을 먹고 불을 때고 잠을 자면서 절실한 것을 잡았지요. 혼자 있을 때는 사소한 것도 울림으로 다가오지요. 이를테면 개미 한 마리를 볼 때에도 남다르지요. 나는 빈집에 사는 동안 지나쳐온 일들을 돌이켜 보았지요. 친구들과 어울려 떠들다 돌아온 밤에 느끼는, ‘허탈의 오르가슴’이 떠난 자리에 절실함이 채워졌지요. 그동안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 대상들이 꼬리를 물고 다가왔지요. 좀 끔찍한 상상이겠지만, 벌레들을 손아귀에 쥐고 있다 바닥에 패대기치면 제 갈 길로 뿔뿔이 흩어지지요. 시쓰는 사람이 살길은, 제 갈 길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에게 절실한 게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지요.




5.세상 어디나 집필실

술만 마시다 졸업사진을 찍었지요. 막막하고 심난했지요. 4년 동안 버리지 못한 습작시를 골랐는데 읽을만한 작품이 없었지요. 취직도 하기 싫었지요. 매달릴 곳은 오직 시뿐이었지요.

은행잎이 물들어 떨어지고 있었지요. 새벽까지 인사동 모처에서 술을 마시고 여동생이 자취하는 연희동까지 걸어가는 동안, 데뷔작 “청소부”를 썼지요. 나머지 두 편의 작품 “제비집”, “달팽이의 꿈”은 빈집에 들어가 살 때, 예전에 써뒀던 걸 손본 것이지요. 17편을 묶어 신문사에 접수하고 여행을 떠났지요. 창원, 마산 근처를 떠돌다 크리스마스가 지나 돌아오게 되었지요. 전화통이 불나게 문화부에서 찾더라는 말을 듣고 의아해했지요. 문화부에 전화해 보니 전화한 사람이 없다고 했지요. 알고 보니 작품을 응모한 신문사 문화부였지요.

첫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대개가 학교 다닐 때 쓴 작품이지요. 별로 고친 데가 없어 보일 겁니다. 첫 시집을 낼 때에 고칠 여유가 없었지요. 신춘문예 심사를 봤던 선생님께 작품을 보여드렸는데, 어느 날 출판사에서 교정을 보러오라 해서 깜짝 놀랐지요. 교정 보러간 자리에서 시집 제목도 붙였지요.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차라리 잘된 일이지요. 내 경우엔 한번 쓴 것을 뜯어고치지 않지요. 차라리 버리고 다시 쓰는 편을 택하지요. 한 번에 쓸 수 없는 것은 메모 해두고 다음에 꺼내 보지요. 오늘 쓸 수 있는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욕심 부릴 필요가 없는 거지요.

두 번째 시집은 카페를 할 때 씌어진 작품들입니다. 카페라는 공간에 갇혀 4년 가깝게 살았지요. 항상 벗어나고 싶었지요. 무녀리 시인 “저수지”에서 맺음 시인 “며느리밥풀꽃”까지 상처, 갇힘, 죽음의 이미지들로 득실거리지요. 마라톤 선수가 고통을 잊기 위해 즐거웠던 일만 떠올린다면 완주할 수 없겠지요. 나는 나를 둘러싼 어두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려고 추억을 불러들였지요. 하지만 그것들 또한 폐허로 변해있었지요. 나는 나와, 나의 현재와 싸울 수밖에 없었지요. 싸워 이기지 못하면 하루하루 살아갈 수 없었지요.

세 번째 시집은 두 번째 시집의 연장선상에서 씌어졌지요. 무녀리 시 “잠긴 방문”은 누구나가 한 번씩은 경험한 적이 있는 일을 옮긴 것이지요. 아차 하는 찰나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이지요. 열쇠를 안에 두고 문을 잠근 화자는, 어디에도 없는 열쇠가게를 향해 걸어가야 하지요. 문이 잠기는 순간, 현재라는 경계에 놓인 과거와 미래를 생각해 보았지요. 우리의 삶은 언제나 현재에 놓여 있지요. 미래로 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우리는 언제나 현재에 놓여있는 것이지요.

네 번째 시집부터는, ‘보여주기’를 통해 이미지를 전달하려고 했지요. 삽날에 머리통이 찍힌 뱀은, 방향도 없이 내둘러지는 호스가 되었지요. 머리통을 버린 뱀은 어쩔 수 없이, 어딘가로 가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게 우리들 삶이 아닌가? 그게 제가 생각한 삶의 “이미지”였지요. 끝연에 이렇게 썼지요. 가야 한다/가야 한다/ 잊으러 가야 한다// 태어난 순간부터가 고통의 시작이라면 너무한 건가요? 권투를 예로 든다면, 처음부터 한 방을 의식하고 크게 휘두르다 보면 힘만 빠지게 되겠지요. 시에서도 무수한 잽을 날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결정적인 순간을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아무리 말을 많이 해도 믿음을 주지 못하죠.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겠지요. 감성이나 이성에 호소하기 보다는 독자 각자의 감각에 맡기는 방법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감성이나 이성에 호소하게 되면 일방통행이 되기 쉽거든요. 진술이란 것은 통째로 보면 일방통행이겠지요.

다섯 번째 시집의 시들은 미리 사진을 찍어놓고 쓴 것이지요. 내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만 찍고, 내게 필요한 만큼 범위를 좁혀 엑기스를 뽑았다고나 할까요. 내가 가진 절실함을 통해 대상과 현상을 보고자 했지요. 절실함을 통해 보면 달리 보이거든요. 그게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요. 우물을 파는데 욕심을 부려 범위를 넓게 잡으면 힘만 들겠지요. 내가 팔 수 있는 만큼 범위를 좁혀야 물을 얻을 수 있겠지요. “진흙탕에 찍힌 바퀴자국”이나 “삽” 같은 작품은 사진을 놓고 내가 옮길 수 있는 만큼 옮겨 적은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