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르메, 친애하는 베를렌 씨에게
파리. 1885년 11월 16일 월요일
만약 이 모두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어느 날, 특히 어느 수요일, 해질녘쯤 해서 내 당신을 찾아가 보리다. 얘기를 나누다 보면 오늘 잘 생각이 나지 않는 자서전의 디테일들이 당신이나 내 머리에 떠오를 것이요, 오직 주인공만이 알고 있는 호적 사항이라든가, 날짜 따위 이외의 것들이.
이제 내 이야기를 하겠소.
그렇소, 나는 오늘날은 라페리에르 통로라고 부르는 파리의 거리에서 1842년 3월 18일에 태어났소. 부모 양쪽 가문은 프랑스 혁명 이후 줄곧 행정업무와 등기 업무에 종사하였소. 비록 조상들이 거의 모두 그 곳의 고위층의 자리에 있었지만, 어릴 적부터 내게도 물려 주고자 했던 이 방면의 이력을 나는 회피했다오. 나의 여러 조상들에게서 등기 사무 이외의 일을 위해서 붓을 놀리는 취미가 있었다는 흔적을 나는 발견할 수 있소. 아마 등기 사무가 생기기 이전인 듯 싶지만, 내 조상들 중 한 분은 루이 16세 치하에서 서적상 협회의 간사를 지냈는데 내가 다시 인쇄하게 한 <바테크 드 벡포르>의 프랑스판 원본 첫머리에 실린 <왕의 출판 허가>를 받은 사람 명단 끝에서 그 분 이름을 발견했소. 다른 한 분은 <알마나크 데 뮤즈>와 <레 제트렌오 담>에 풍자시를 썼지요. 내가 어렸을 때는 이 해묵은 파리 부르주아 가정에서 내 친척인 마뉴 엥씨를 만난 일이 있었는데 이 분은 <천사와 악마>라는 낭만적인 책을 출판하여 요새도 내가 받고 있는 고서 목록 중의 값비싼 항목에 때때로 나타나지요.
조금 앞서 내가 파리의 가정 태생이라고 한 것은 우리가 항상 파리에 살아왔기 때문이요. 그러나 본은 부르기뇽과 로렌 지방, 심지어는 독일계까지 섞여 있소.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즉 일곱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의 귀여움을 받고 자랐소. 그 후 나는 수많은 중학교 기숙사들을 전전하였고 라마르틴느형의 성격으로, 친구 집에서 만난 일이 있었던 문사 베랑제 씨를 어느 날엔가 필적하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남 모르는 욕심을 품고 있었다오. 이 꿈을 실천에 옮긴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같이 보였지만 나는 오랫동안 백여 권의 작은 노트에 운문을 연습해 보았는데,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것 모두 다 몰수당하고 말았지요.
내가 사회로 진출할 무렵에는, 당신도 알다시피, 시인이 자기 예술만 가지고는, 백보 양보한다하더라도 먹고 살 방법이 없었지요. 단지 에드거 엘런 포를 좀더 잘 읽어볼까하여 영어를 배운 덕에, 나는 스물 살에, 그냥 떠나고 싶어서 영국으로 떠났지요. 물론 영어 회화를 배우고, 또 다른 호구지책 없이도 조용히 살 수 있는 한 구석에서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서이기도 했소. 결혼을 하고 보니 먹고 사는 것도 급했소.
이십년이 자난 오늘, 그리고 많은 시간을 허비하긴 했지만 나 스스로는 쓸쓸히 내가 그렇게 하기를 잘했지라고 생각하고 있소. 그 까닭인즉, 젊었을 때 쓴 산문과 시 조각들, 그에 반향하는 듯, 이곳 저곳에 발표한 그 후의 작품들은 차치하고라도, 어떤 문예지의 창간호가 나올 때마다 나는, 무엇인가 다른 작품을 꿈꾸고 실험해 보며, 연금술사와도 같은 인내력을 가지고, 마치 옛날에 <위대한 작품>을 만드는 가마솥에 불을 때기 위하여 가재 도구와 지붕 서까래를 불태웠듯이 모든 허욕과 모든 만족감을 던져 버릴 용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오. 무슨 대작? 말하기 어렵구료. 간단히 말해서 여러 권으로 된 하나의 책, 비록 멋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우연의 영감들을 주워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건축적이고 신중히 계획된 책다운 책 말이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절대의 <책>이라고 말하겠소. 결국 글을 써 본 사람이면, 심지어 천재들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시도해 본 것이란 이 한 권의 책밖에 없다는 것이 내 신념이고 보면, 대지의 올페적 설명, 이것이 시인의 유일한 숙제이며 문학이라는 재주의 본질이겠소. 왜냐 하면 책의 리듬 자체, 그러고보면 비주관적인 것인 동시에 살아 있는 것인 책의 리듬 자체가 페이지를 매기는 데 있어서까지 이 꿈의 방정식, 혹은 <시가>(오드)와 병행하기 때문이오.
사랑하는 친구여, 이것이 바로 내가 머리가 쪼개지는 듯하고 지겨워서, 팽개쳐 버렸던 내 악덕의 적나라한 고백이오. 그러나 이 생각은 내 머리를 떠나지 않고, 나는 행여나 하고 이 꿈을 이루어 보려 하오. 이 거역의 전체를 다 이루겠다는 것은 아니지만(그렇게 하려면 내가 그 무언가 엄청난 존재일 필요가 있으리다!), 그 전체의 이미 이루어진 부분이 되도록 하고 한 사람의 일생으로는 부족할 전체 중 해야 할 남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 줄 수 있도록 이 단편이 제자리를 차지함으로써 그의 위대한 진정함이 빛나도록 하고 싶다는 말이오. 한 부분의 몫을 통하여 그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 내가 실제로 완성하지 못한 것이지만 내가 그것을 알고는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거요.
이미 알고 있는, 즉 이미 쓴 수많은 조각조각들이 있어, 때때로 가장 먼저 당신 자신을 포함해서 여러 매력 있고 탁월한 지성들의 친절한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이것들을 모아서 책을 꾸미려고 서두를 생각은 한 번도 없었고 보면 그리 간단한 일은 전혀 아니오. 이 모든 것은 내게 있어서 내 손을 쉬지 않게 한다는 잠정적인 가치 이외의 그 어떤 가치도 없소. 그중 어떤 작품이 때때로 여러 사람들에게 아무리 성공적으로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을 모아 하나의 앨범을 만드는 것은 옳은 일이겠으나 책을 만들 수는 없소. 반면 바니에 출판사가 이 조각들을 얻어 갈 수는 있겠으나 내가 이들을 페이지 위에 인쇄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오래 묵고 귀중한 걸레의 천조각들을 수집하는 것과 같은 의미밖에는 없소. <운문과 산문의 앨범>이나 그 어떤 제목에 <앨범>이라는 자조적인 어휘를 넣어가지고 말이오.
어려운 때나, 혹은 내겐 엄청나게 비싼 카노를 사기 위해서 나는 깨끗하나 자질구레한 일들을 했었으나, 이런 것들([고대의 모든 신들], [영어의 어휘들])에 대해서는 길게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마땅할 것 같소. 그러나 이것을 제외하고는 필요성이나 기쁨을 위해서 양보를 해 본 일은 그리 잦지 않았소. 그 반면 어느 순간 폭군 같은 책을 쓰는 일이 손에 잡히질 않아 절망한 나머지, 여기저기에서 글들을 주워 모아 놓고 나 혼자서 화장, 보석, 일용품, 심지어 연극, 식사의 메뉴 등에 걸쳐 <최신모드>라는 신문을 만들어 보려고 시도해 보았는데, 그렇게 펴낸 여덟 혹은 열 개의 호를 꺼내 먼지를 털어 보노라면 아직도 나는 오랫동안 멍하니 생각에 잠기곤 한다오.
고독하다 보면 자연히 취하게 되는 태도란 이런거요. 즉 나의 집에서부터(지금은 로마 가 89번지요) 내가 내 시간을 지불하여, 얼마 간의 세금을 물고 있는 여러 장소, 즉 콩드르세 고등학교, 자종 드 사이잉, 끝으로 롤렝 전문학교까지의 길 이외에는 그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내 가족들이 지켜 주는 아파트를 비우는 일이 거의 없소. 오래되고 귀중한 몇 가지 가구들과 대체로 하얗게 비어 있기 십상인 백지들 사이가 나의 거처요. 나의 가장 귀한 친우는 빌리에(드 릴 아당)과 망데스지요. 그리고 나는 10년 동안 매일같이 마네를 만나왔는 데 오늘날 그가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구료! 친애하는 베를렌, 당신의 [저주받은 시인들]과 위스망의 [거꾸로]는 오랫동안 텅 비어 있던 나의 화요회에, 우리들을 사랑하는 젊은 시인들의(말라르메주의자들은 말고) 관심을 돌리게 하였다오. 그래서 단지 사람들이 서로 만나는 것에 불과한 일인데 더러는 내가 무슨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한 모양이오. 매우 섬세한 터이라, 나는 이 같은 젊은 사람들이 관심을 돌리게 된 쪽에 한 10년쯤 먼저 가 있었다 하겠소.
그리도 오랫동안 대신문들이 채로 거르다시피 찾아내 보여서 나 자신 매우 기이한 인물처럼 되어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일화 같은 것 하나 없는 내 일생을 이로써 다 얘기한 셈이오. 일상적인 걱정, 기쁨, 슬픔 따위를 제외하고는 아무리 유심히 살펴보아도 별로 없구료. 발레를 상연하는 곳, 오르간 연주를 하는 곳이면 어디나 나타나는 터이지만 이건 거의 서로 모순된 내 두가지의 예술적 정열이고 그 의미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니 그게 전부요. 정신적 피로가 너무 심할 때면 수년 동안 늘 같은 장소인 세느 강변과 퐁텐느불로 숲에서 내 흥분을 잊곤 하지요. 거기서는 강을 따라 배를 타고 항행하는 데 정신이 팔려 나는 전연 다른 사람같이 느껴진다오. 저 물속에 여러 개의 날들이 모두 가라앉도록 버려 두는 강, 그러면서도 그 날들을 잃어버렸다는 느낌도, 한 가닥 회한의 그늘도 갖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강을 나는 찬미하오. 마호가니의 단정을 타고 산책하는 사람에 불과하나 자기의 선대에 자부심이 매우 강한 열정에 찬 뱃몰이꾼이기도 하다오…
말라르메 자서전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