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시인 시집 [직박구리의 봄노래](파란, 2018) 해설
무위의 빛, 허공의 시
한용국(시인)
1.
<술몽쇄언(述夢瑣言)>이라는 책이 있다. 조선 후기의 거사 월창 김대현이 쓴 책이다. 열 살에 이미 시서를 통달할 만큼 명석했으며, 유가와 도가의 책을 섭렵했다. 마흔 살 이후 <능엄경>을 읽은 뒤 불교 사상에 심취하여 불서만을 탐독하였다. 임종 무렵에 자신의 다른 저서들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자학정전(字學正典)>과 <술몽쇄언>만을 남겼다. 이 중 <술몽쇄언>은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유교, 도교의 사상을 가미하여 꿈으로 인생을 설명한 글이다. 월창 김대현은 「자서」에 술몽쇄언의 뜻을 이렇게 설명해 놓았다. “그 말이 자질구레하고, 좀스러워서 꿈 깬 사람을 대하여 이야기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뜻이다.” 고금을 통틀어 삶을 꿈이라고 말한 사람은 많았다. 부족한 식견이지만, 나에게는 고전을 제외하고 이 책만큼 암시적이면서도 명쾌하게 삶과 꿈의 관계를 서술한 책은 없었다.
시집을 읽고 난 뒤, 좀 더 정확하게는 이 시집을 읽기 위하여 거의 반세기에 달하는 시인의 내력을 모두 읽어 내려간 뒤에, 문득 머릿속에 이 책 술몽쇄언이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자서에 해당하는 「시인의 말」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시인은 「시인의 말」에서 귀촌 이후 ‘임포’의 삶을 흉내 내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매처학자 임포,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고, 자기 은거지의 매화를 아내로 삼고 두루미를 자식 삼아 살았으며, 생평에 썼던 시와 그림을 모두 불살랐던 은일지사. 임포는 말한다. “내 뜻은 진실되다 하나, 집도 공명과 부귀도 어울리지 않는다. 단지 청산과 녹수가 나에게 알맞다.”
월창 거사와 임포의 간략한 내력 속에서 읽히는 것은 꿈과 탈속이라는 키워드다. 얼핏 보기에는 상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꿈과 탈속, 이 두 단어는 분명히 삶의 내적 요건을 지시하는 단어들이다. 그러나 이 두 단어는 내부 속에 더 큰 외부를 거느리고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꿈은 삶의 필요조건이면서도 그 함의는 삶을 넘어선 자리를 포괄한다. 탈속도 마찬가지다. 세속을 벗어난 삶 또한 삶의 부분적인 형식이지만, 자연이라는 더 큰 함의를 통해 삶을 송두리째 덮어 버린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꿈과 탈속은 안이 바깥보다 큰 공간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상상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는 언어적으로만 존재 가능한 공간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꿈은 탈속을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탈속의 삶조차 꿈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을 꾸면서 꿈에서 깰 수는 없듯이 살면서 삶을 벗어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대한 꿈을 깬 삶에 가까운 가상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바로 자연이라는 공간이다. 하지만 한 가지 조건이 전제된다. 이 자연에는 인위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즉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가 중심인 공간이어야 하는 것이다. 사람조차 자연스럽게 자연의 일부에 속하는 공간, 그렇기 때문에 매화와 결혼하고 두루미를 자식 삼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꿈에서 깬 상태와 최대한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시인의 말」을 읽으면서 술몽쇄언을 떠올린 것은 위에서 말한 바, 시인의 자연의 삶에 최대한 가깝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귀촌 이후, 시인은 드디어 “혼자서 놀며 사는 팔자”가 되었다. 그 속에서 새롭게 “새와 짐승, 나무들”을 만나고 “아침저녁 놀과 달, 별들의 전에 몰랐던 품새와 움직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시인은 그 이미지들을 작품 속에 데려다 놓았다. 시인은 겸허하게 “앞산 하늘 끝 뜬 노을 아내 삼고 뒷산 고라니 자식 삼네” 하는 허황한 수작을 늘어놓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단순히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이번 시집을 단지 일별하기만 하더라도 시인의 시에는 자연이 날것 그대로 감각되고 있으며, 그 감각들을 통해 자연의 자연됨을 바라보면서 그 너머까지를 시로 암시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꿈속에서 꿈 밖으로 나오려는 사람의 밝은 눈빛 한 줄기가 시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나 할까. 이 글은 그 눈빛 한 줄기의 기원을 찾아가는 글이다. 그 길은 시인의 눈과 시의 눈 모두를 시편들 속에서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2.
서울 아파트 거실서 지내던 난 화분들을
시골집으로 데려와 마당에 내놓는다.
어리둥절 며칠 뒤 난 잎에 거뭇거뭇 흑반이 끼기 시작한다.
하나둘 예외가 없다.
긴 잎은 가운데가 갈라지고 이내 잎끝부터 마른다.
결국 실내에서 컸던 난 잎들
모두 말라 떨어진다. 지난날 강직함을 털썩털썩 내려놓는다.
자디잔 난석 틈에는 새 촉들이 솟는다.
품새의 크기와 색깔을 바꿔 밀어 올린 저 민낯들
낯선 바람과 햇볕에 근성 바꿔 어울리는
단순 적응인가 방어인가
머잖아 죽을 자리 잡는 짐승인 듯
여기 으늑한 산골 마을을 골라 나는 왔다.
귀촌은 도연명(陶淵明)이 원조지만 이 구석진 동네 아무개로 와
새참에 몇 잔 털어 넣는 막소주가
허기진 내 내벽에 홧홧한 불길로 치붙어 오르는데
저는 무엇에 허기졌는가 자질한 고랑물이 터앝의 두둑마다
흙을 머금고 위로 위로 치솟는 걸 본다.
보고 있으면 꼭 절정까지 솟구치는 불길이다.
퇴경(退京) 전 달래고 쓰다듬던 서울을 내려놓고
적응인지 방어인지
본색을 바꿔 가며 이즘 나도 새 촉들을
절정까지 푸른 불길들로 밀어 올린다.
―「물도 때로는 불길이다」 전문
시인의 귀촌을 탈속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면, 우선 탈속 이전의 삶은 어떠했을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시에 따르면 그것은 서울에서의 삶이다. 거기서 시인은 “사람과 사람 사이/별수 없어 또 사람들만 빼곡히 채워 넣고/그들의 부싯돌 불 튀듯 맞부딪는 살기와 충동조절장애”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그 삶을 견디는 방법은 “열 길 스무 길 지옥을 파고 들앉”아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인은 그곳에서 쉽게 도망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퇴물 교수질”도 “뒤늦은 할아비 노릇”도 하며 끝끝내 버텨 낸 것이다.(이상 「귀촌」) 그 버팀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짐작하기로는 세속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세속에 ‘부대끼며’ 살아가는 자신의 마음을 부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울이 지옥이 아니라, 서울에 사는 시인의 마음이 지옥이라는 생각이다. 인용 시에서 시인은 시골집에서 서울 아파트에서 거실에서 기르던 난 화분들을 마당에 내놓는다. 거실보다 야외에서 잘 자랄 줄 알았던 난 화분은 오히려 “거뭇거뭇 흑반이 끼기” 시작하고, 결국 난 잎들이 “모두 말라 떨어”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시에서 죽어 가는 난 화분을 바라보는 시인의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인은 “지난날 강직함을 털썩털썩 내려놓는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의 탈속 이전의 삶을 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서울의 삶을 오로지 “강직함”으로 버텨 온 것이다. 시인에게는 그 “강직함”이 탈속 이전의 삶을 지탱한 근본 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난은 다시 “품새의 크기와 색깔을 바꿔” “민낯” 같은 “새 촉”들을 밀어 올린다. 시인은 그것을 보며 “단순 적응인가 방어인가”라고 독백하지만, 단순한 독백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적응과 방어는 대립항인 동시에 동일항이기도 한 것이다. “머잖아 죽을 자리 잡는 짐승인 듯/여기 으늑한 산골 마을을 골라 나는 왔다”고 서술하고 있지만 그것은 단순한 도피나 물러섬이 아니다. 시인은 귀촌 이후의 삶을 “흙을 머금고 위로 위로 치솟는”, “보고 있으면 꼭 절정까지 솟구치는 불길”로 드러낸다. 시의 제목 “물도 때로는 불길이다”는 시인의 그런 심경을 뒷받침한다. 물이 흐름을 통한 적응의 속성을 가진다면, 불은 타오름을 통한 방어-재생의 의미를 가진다. 서울, 탈속 이전의 삶에서 그가 강직함으로 버텨 온 것처럼 귀촌 이후의 삶도 어쩌면 서울에서의 삶과 다르지 않다. 다만 삶의 형식이 바뀐 것뿐이다.
시인은 귀촌 이후, ‘놀이’의 삶을 산다. 어쩌면 이 ‘놀이’의 삶을 ‘무위’의 삶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또 사람들만” 채우던 삶이 아니라 그 속에 “등 굽은 호두나무나 널찍널찍 들여앉”히고, “시간의 거칠거칠한 몸뚱이를/새삼 어루만”지는 삶이며(이상 「귀촌」), “시도 잠시 내려놓고/개론 정도 시어 터진 철학 담론도 훌훌 털어 접고” “화폭 속 저 산 밑 물가에서/등목이나” 하는 “산수첩 속에 가” 노는 삶이다(이상 「폭염」). 하지만 그런 놀이의 삶에서도 그는 “새 촉”을 밀어 올리는 힘과, “겉늙은 바랭이 풀이 떠내려오는 토사를 전심전력 등 돌려/저 혼자 막아 낸 걸/가닥 실한 곁뿌리로 악착같이 그 전역을 붙잡고/살아 낸 걸” 본다(「폭염」). 이 구절은 시인의 귀촌 이후의 삶에 대한 자세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그것은 “전심전력”이라는 시어에서 드러난다. “전심전력”으로 논다. ‘무위’를 흉내나 내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다. 놀아도 전심전력으로 놀고 무위도 전심전력으로 해내겠다는 마음이다. 기왕에 해낼 ‘무위’라면 임포가 매처학자로 살았듯이, 시인도 “앞산 하늘 끝 뜬 노을 아내 삼고 뒷산 고라니 자식 삼”아 살아가겠다는 철저한 자세인 것이다(「봄꽃 적막」). 그래서 “나도 홀로 마음 열고 노니네. 하릴없이 이 산골에 뒹구네”(같은 시)는 그저 하릴없이 노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무위도 전심전력일 때 진정한 무위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3.
그렇다면 이런 무위 속에서 삶, 목숨이 속한 자리는 어디인가. 철저한 무위를 살아 내려는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자연, “새와 짐승, 나무들”, “아침저녁 놀과 달, 별들의 전에 몰랐던 품새”들, 시인은 그 자연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작품들 속에 두루 자리 잡는다”고 말하고 있다(「시인의 말」). 어쩌면 이는 시인이 바라본 자연을 시적 조형 능력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 ‘드러냄’은 다분히 시적 주관을 통한 의도의 영역이다. 하지만 시인은 ‘자리잡는다’고 쓰고 있다. 이 말은 오히려 자연이 서로 ‘관계 맺는’ 자리에 ‘시’를 데려다 놓고자 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한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시들 속에 자리 잡은 자연 이미지들은 형용사적이라기보다는 동사적 양태를 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을비」에서 가을비는 “소리만” 오는 것이 아니라 “호두나무를 기어오르”고 “이 나라 전역에 흩어져 달아”나며 “소리도 없이 고양이 걸음으로 온다”. 「직박구리의 봄노래」는 직박구리의 울음과 나무의 관계가 다양한 이미지들의 중첩을 통해 함께 부르는 노래로 조응되고 있으며, 「달개비」에서는 “징그러운 더위도/택배 선물처럼 수납해/집 뒤 야트막한 자드락에/사소하게 핀” 과정으로서의 개화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집에 드러나는 자연은 어떤 것이든, 그야말로 ‘서로 놀고 있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자연은 이렇게 저희끼리 놀고 있다. 그리고 시인은 그 자연 속에서 놀고 있다. 그렇다면 자연이 놀고 있는 마당은 어디일까? 시편들에 따르면 그곳은 허공이다. ‘비’는 “허공의 거죽을 타고 주르룩 미끄러져 내”리고(「가을비」), “봄꽃”들은 “마을의 이 허공 저 허공”에 “전문 시위꾼처럼 떼로 와 함성 만발”하고(「봄꽃 적막」), “새”는 “노숙 중인 허공을 끌어내리고 좀 더 높이 노래를 얹”는다(「직박구리의 봄노래」). “양귀비 붉은 꽃”이 진 자리에도 “흘린 거 묻은 거 없는 허공이 천연덕스레 깊”고(「늦깎이 공부」), 공원의 나도박달나무도 “품새 꼭꼭 여”미고 “허공 안으로 골똘히 무너져 들었다”(「겨울 미니어처」). 이렇게 이번 시집에서 자연의 이미지들이 드러나고 있는 시편들에는 거의 예외 없이 ‘허공’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허공은 단순히 자연의 배경 이미지로만 등장하지 않는다. 시 「별똥」에서 허공은 우주의 “호스피스 병동”이기까지도 하다. 허공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자연이자, 능동적으로 다른 자연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자연을 하나의 육체로 볼 수 있다면 허공은 근원적으로 다른 육체들과 관계 맺는 자연으로서 또 하나의 육체성을 부여받고 있으며, 상호 조응하는 대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때 없이 시간이 기어 오르내린 벚나무 아름드리 둥치엔
겉껍질 틈새 실낱의 고샅길이 나 있다.
그 길로 올해도 긴적없이 왔다 가는 봄 한철
이제 나도 하직하련다.
바람 없어도 때 없이 낙하하는
저 사창고개 줄지어 선 벚나무 떼구름 꽃들 속
꽃 진 자리가 더 큰 허공에게 자리 내주는
그 숨어 있는 자드락길로
내 가련다.
이 세상 너머 더 환한 세상 없어도
더러는 길 잘못 들어 옛날이 고스란히 살고 있는
과민소국 어느 낡은 집 걸쇠 따고 들어가 유폐될지라도
더러는 잘못 든 길 되짚어 나와
다시 남부여대 지고 이고 가는 유목의 뭇 마방들 뒤따라
황천의 천산북로 머나먼 길 헤맬지라도,
벚나무 떼구름들 속 내려가는
이 봄 한철의 하직 길
아파트 후문 근처 맥줏집에서 수입 맥주 한 병 입매나 하고
나도 긴적없이 휘적휘적 가련다.
앞서간 치들의 발자국 환할 일은 없지만
누구나 하늘에는 자기 길이 따로 있어 그 길 오고 갈 마련이다.
―「먼 길」 전문
시인은 봄날의 벚나무 둥치를 보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벚나무 둥치 “겉껍질 틈새 실낱의 고샅길”을 보고 있다. 거기서 시인은 자취 없이 왔다 가는 봄의 길, 즉 시간의 길을 더듬어 보면서 이제 자신도 “하직 길”을 준비한다. 그 하직의 길은 “벚나무 떼구름 꽃들 속/꽃 진 자리가 더 큰 허공에게 자리 내주는/그 숨어 있는 자드락길”이다. 그 길 너머 다른 세상, 더 나은 세상은 이제 꿈꾸지 않는다. 그 하직의 길에서 그가 만날 삶이란 과민소국, 곧 노자의 이상향의 삶이거나, 자유로운 유목의 삶이다. 그 길의 첫머리 또한 거창하지 않다. 그저 “아파트 후문 근처 맥줏집에서 수입 맥주 한 병 입매나 하고” 가는 소박한 생활에서 시작되는 길이다. “앞서간 치들의 발자국”의 도움을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누구나 하늘에는 자기 길이 따로 있어 그 길 오고 갈 마련”의 길을 시인도 걸어가고자 할 뿐이다. 하늘의 길은 곧 허공의 길이고, 허공의 길은 곧 자연의 길이다. 허공과 자연과 시인의 삶이 서로 비추고 겹쳐 드는 길, 그 길 위에서만이 “이 마을의 이 허공 저 허공에도/전문 시위꾼처럼 떼로 와 함성 만발한 봄꽃들/의 깊은 적막 속에/저 하처미자 처자식 데리고/나도 홀로 마음 열고 노니네. 하릴없이 이 산골에 뒹구네”(「봄꽃 적막」)의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4.
그러나 대지 없는 허공이 있을까. 시인이 꿈꾸는 “하처미자”의 삶은 일종의 유토피아적 삶이다. 여전히 시인의 발은 대지에 뿌리내리고 있다. 대지를 걷는 사람으로서 시인은 때로 대지 깊숙이 손을 넣어 자신의 뿌리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뿌리에서 자라난 아픈 줄기들을 달래 주기도 하며, 나아가 곁에서 더불어 자라고 살아가는 목숨과 이웃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래서인지 시인의 이번 시집에는 시인의 힘든 삶과 가족사를 드러낸 시편들이 보인다. “혹한과 주림에 궁상떨던/버즘나무의 1960년대 허구리께”에 참고서와 영어 사전을 “쌀 한 봉지, 연탄 두 장 사기 위해 내다” 팔거나(「헌책방」), “곱삶이 한 그릇 대신” “왕소금 한 움큼 털어 넣고 물을” 마시던 가난과 허기로 가득한 과거를 떠올리고(「왕소금 점심」), “소박데기 누님”의 아픔을 돌이켜 보기도 하며(「가을 햇살」), “관절이 다 어긋나 찌그럭거리는/폐품 직전의 몸”이 된 어머니의 삶과 아픔을 간절하게 되뇌어 보기도 한다(「어머니, 엄마, 맘……」). 시인의 이웃에 대한 관심은 어쩌면 자신의 뿌리에 새겨져 있는 고통과 아픔을 잊지 않는 데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깻박치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 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
―「합덕장 길에서」 부분
시인은 버스 정류장에서 매일 아침 한 사내를 목격한다. 그는 아침나절이면 읍내 버스에 “저자에 내다 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로 꾸려진 장짐을 올려 주고는 했다. 6.25로 인해 한쪽 팔을 잃었고, “절량”의 시절을 겪었지만,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모습은 그가 시련을 잘 견뎌 내며 살아왔음을 암시하고 있다. 어쩌면 시 속의 그 사내는 그 시절을 지나온 모든 사람들의 초상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던 그가 보이지 않자 시인은 궁금해한다.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등에서 그의 죽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시인은 사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궁리하다가, 사내가 없어 휑한 정류장을 보며,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고 쓴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 있는가. 시에 따르면 그 사내는 “읍내 쪽” 구름 위에 “푸른 하늘”을 무진장 얹어 놓고 있다. 시인은 귀촌 이후의 삶에서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아픔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시인과 함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며, 그가 돌아보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내의 죽음에 대한 시인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 사내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 시 「먼 길」에서 보이는 것처럼 단지 “자기 길”을 그 사내도 간 것이라고 시인은 생각하는 것이다. 그 또한 어쩌면 “하처미자”의 삶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하처미자”의 삶을,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가기에는 세계는 여전히 폭력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고무 통에 살해한 시신 젓 담그고/왕따 친구에게 토사물 먹이고/몸에 끓는 물 들이붓고 패서 죽이는 놀이를/놀이로 즐겁게 노는” 곳이고, “인간이 동물로 급발진하듯 튀어 들어가는/인간이 마음에 참호처럼 연옥을 파서 놀이 삼아 들어가는” 곳이다(「만화경」). “1947년 봄/심야/용당포가 삼켰던 한 영아”의 비극은 65년이 지나서도 사라지지 않고, 시리아 난민 세 살 아이 ‘아일란’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세기가 바뀌어도/인간은 언제나 죽고 죽이는 전쟁과 살육에 골몰”해 있는 것이다.(이상 「Please, Non Die」) 아무리 전심전력으로 무위하고자 한다 하더라도, 시인의 마음에는 끝내 어두운 그림자가 깔릴 수밖에 없다.
그 나라는 맹골수로에 전복되기 직전 직각 벽으로 기울던 대형 여객선처럼
이른바 난파 직전 고관, 졸부들, 정치꾼, 얼치기 기자들이 혹은 변복으로 혹은 팬티 차림으로 제일 먼저 빠져나와 도망갔다고 한다.
갑판 밑 선실 방방마다 구명조끼도 못 입은 채 대기하다 가라앉은
영문 모른 뭇 목숨들
머리 좋은 몇몇이나 몰살 중에 살아 나왔다고 한다.
그렇게 격류 흐르는 서남단 심층류에 금세기 초 깊이 가라앉은,
거기 켜켜이 썩은 탐욕과 비리 속에 생금(生金)처럼 묻힌
그 어리디어린 미래가
이 시 읽는 당신이 아, 바로 그 나라다.
―「아, 그 나라」 전문
시인은 세월호 사건에 빗대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온 사람들은 선장과 기관사들이었다. 승객을 끝까지 지켜야 할 사람들이,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어이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시인은 세월호에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본다.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달아나는 것은 “고관, 졸부들, 정치꾼, 얼치기 기자들”이다. 이렇듯 “켜켜이 썩은 탐욕과 비리”로 가득한 나라에서 힘없고 약한 사람들, “영문 모른 뭇 목숨들”은 “구명조끼도 못 입은 채 대기하다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리디어린 미래”, “이 시 읽는 당신”이 “바로 그 나라”라는 시인의 전언은 시인의 자책이자 반성인 동시에 메아리가 되기를 원한다. 현실이 이렇게 될 때까지 수수방관한 시인도 독자도 모두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심해에 폐선이 가라앉아 있다. 갑판 밑 비좁은 기관실에 숨었던 악령이 기어올라 온다. 고개 쳐들고 입 쩍 벌린다. 제 삶도 집어삼킨 불쑥 출현한 괴물, 여섯 각 장미꽃을 쓴 채 통째로 떠 있다”(「이즘 내 마음에는」)라는 탄식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그것은 어쩌면 폭력적인 세계와 대결하는 내면적 사투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세계를 대면하는 시인의 마음은 “내 겪은 시절 그보다 더 험악해선 안 된다는 부질없는 생각에/벌써 마음 진창말이인 저 어린 게/참 너무 안됐다는 헛된 걱정에/가슴 아래 명치께가 돌연 뻐근해지는”(「바로 그런 아침」) 연민의 감정으로 자라나는 세대를 바라보게도 한다. 그래서일까, 시인이 문득 자신을 “괜히 허공에 발가벗겨/내쫓긴 겨울나무”(「겨울나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은.
대지에 뿌리내린 삶은 아프다. 그러므로 시인의 무위는 완전한 무위가 아니다. 어쩌면 시인에게 완전한 무위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지의 아픈 살결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시인의 말 “논다”를 생각해 보자. 어쩌면 시인의 ‘전심전력으로 논다’의 의미는 ‘전심전력으로 함께한다’는 말의 동의어는 아닐까. 시인의 “하처미자”의 삶이란 단지 자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노을’과 ‘고라니’뿐만 아니라, ‘너’와 ‘우리’ 또한 아내 삼고 자식 삼는 마음이다. 그것이 허공의 마음이며, 허공이 대지를 향하는 마음이고, 허공이 대지를 감싸 안는 마음이기도 할 것이다.
5.
「시인의 말」 첫머리에 시인은 귀촌 이후에도 “변함없이 작품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귀촌 이전의 그의 삶을 버티게 해 준 것이 시였던 것처럼, 귀촌 이후에도 그의 시는 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 탈속 이전의 시들은 마음에 지옥을 들어앉히고 살아야만 했던 힘겨운 삶의 기록이었고, 그 마음을 더 들여다보기 위해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마음밭을 갈아야만 했다. 하지만 귀촌 이후 시인은 시에 대한 다른 생각을 보여 준다. 시인의 삶이 “하처미자”의 무위를 추구하는 것과 아울러, 시인의 시 쓰기도 최대한 인위를 덜어 낸 자연스러운 시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허공으로 상징되는 유토피아와 대지의 아픔 사이를 자연스럽게 매개하는 통로로서의 몸 되기와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A4 용지에 이즘 생활이 전폭 텅 비어 있다.
거기 나를 무릎 꿇려 앉히고
나는 서산대로 짚어 가며 나에게 허무경(經)을 읽힌다.
하루 한 차례씩이다.
진동 모드의 핸드폰이 진저리 쳤나,
그러나 막상 폴더 열면 텅 빈 액정 화면만 빠끔 내다볼 뿐
어디서고 후일담은 오지 않는다.
낮잠 막바지 좌심방의 어디선가
쾅, 쾅, 앞날이 무섭게 닫힌다.
아무리 귓속을 열고 털어 내도 생활은 쏟아지지 않는다.
싱크대에서 쌀 대껴 저녁 밥물 붓고
가늠하느라 담근 손등에 찰랑대는 후반생의 고요.
이때쯤 A4 용지에서 끓던 신경이
눌어붙는다. 다시 전폭 텅 비워진다.
―「생활」 전문
A4 용지를 앞에 두고 시인이 한 말, “이즘 생활이 전폭 텅 비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활”을 ‘삶’으로 치환해 본다면, 그것은 시와 삶의 괴리감에서 오는 자탄일 수도 있다. 이 시가 쓰일 무렵 시인이 쓰는 시들에 시인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시인에게 시는 세계를 받아들이는 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몸으로서의 시가 쓰이지 않을 때, 그것은 아무리 한 자 한 자 “서산대로 짚어 가며” 읽어도 모두 “허무경”일 뿐이어서 자신을 스스로 벌줄 수밖에 없다. 시인이 추구하는 몸으로서의 시는 그가 살아온 삶의 ‘후일담’ 같은 것이다. 무언가 감응했다고 생각해 써 내려가 보면 거기에는 ‘후일담’은 없고 “텅 빈 액정 화면” 같은 공허가 가득 차 있을 때 시인은 허무감을 느낀다. 그런 허무감은 차라리 죽음보다 두려운 것이어서 “좌심방의 어디선가/쾅, 쾅, 앞날이 무섭게 닫”히는 절망감까지도 경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시인은 끝없이 자신을 헤집고 흔들어 보기까지 하지만 어디서도 생활이 “쏟아지지 않는” 시에 좌절한다. 결국 A4 용지에서 끓어오르는 것은 생활이 아니라 “눌어붙”은 “신경”일 뿐이다. 그것은 시인에게는 실패한 시, 죽은 시이다. 결국 시인은 다시 쓴 시들을 삭제해 버린다. 그렇다면 시인의 생활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사실 시인은 알고 있다. “싱크대에서 쌀 대껴 저녁 밥물 붓고/가늠하느라 담근 손등에 찰랑대는 후반생의 고요”에 있다는 것을. 정작 시인이 써야 할 것은 바로 ‘지금 여기’서의 ‘생활’이라는 것을.
묻는다: 이즘엔 생각 하나 꼬깃꼬깃 안주머니에 못 넣는데? 그 지갑에 사물 몇이나 접어 넣을 수 있어? 방아 찧고 밥 짓는 동안 저절로 뭇 게 허업임을 화들짝 알아낸 건 혜능 아닌감?
허업 선생 가로대: 너는 참으로 말을 잘 키우는구나. 정치가 허업은 무슨, 삶이 허업이지. 허업이라 삶은 되레 시도 때도 없이 신나게 방아 찧고 밥 짓는 일이네 이즘은 쌀 그대로 안치고 물 부으면 되는데 방아확 대신 압력 밥솥으로 제 본마음 열겠나 ㅎㅎㅎ.
―「카톡질 한참」 부분
모두 네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의 첫머리에서 시인은 그간 자신의 시업을 밥솥이 폭발하는 것에 비유한다. 그간 시인의 시업은 “어느 말은 낭떠러지에서 추락하는 악몽을” 꾸고, “비척대는 늙은 노숙자처럼 어느 말은 허공에서 소매 끝을 펄렁”대기도 하며, “시간을 등진 어느 말은 급식 밥 잔반으로 사람 마음 전두리에 말라붙”어 있다고 진술한다. 앞서 인용했던 “눌어붙”은 “신경”으로 가득한 시들과 다르지 않다는 성찰이다.
인용 부분에서 시인은 시에 대해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한다. 삶이란 무언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되레 시도 때도 없이 신나게 방아 찧고 밥 짓는 일”인 것이다. 시인의 몸은 “밥솥만 한 누덕진 몸”이고 “그동안 뭇 것이 드나든 통문일 뿐”이며, 그간의 시업은 그저 “휘발하는 말 폭탄”이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시인에게 삶과 시의 괴리감을 극복하는 길은 무엇인가. 그저 “쌀 그대로 안치고 물 부으면 되는” 것이다. 억지로 “압력 밥솥”처럼 압력을 가하고 누른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시유는 다른 시 「문장 노동」에서도 드러난다. “집뒤짐하듯 글 2007에 들른다. 공백을 뒤진다. 어느 말은 씻기고 어느 말은 추려 낸다. 곯은 놈, 파치들을 골라낸다. 누전으로 합선된 말이 탄내를 날리고 녹아내린 뜻 더미가 생각의 육괴다. 시에 곯아 온 등짝에는 상상력이 찐득찐득 눌어붙었다”에서 보이는 것처럼, 이제 시인은 지난한 퇴고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던 자신의 시작법 또는 시작 행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고 있다. 그 성찰을 통해 시인이 도달한 자리는 어디일까. “베란다 문에 구멍을 뚫는” ‘행위 그 자체로서의 시’다. “내 안의 누군가 발뒤꿈치 들고 안 뵈는 앞날을 기어이 또 넘겨다본다”의 “누군가”는 인위적으로 퇴고하고 조율하는 ‘나’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시의 몸’이 되는 ‘나’인 것이다. 그럴 때 “시마(詩魔)에 들린 듯 뼈 앙상한/나의 시는 거기 제 발치에 비로소 둥그런 귀명창 자리를”(「싸락눈 치는 날」) 펼치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시 「말에 관한 명상」에서 “그렇게 이 지상에 내놓았던 온갖 입 발린 소리들을 거둬들인/절제당한 목청 탓인가/묵묵한 고요만으로/그는 마을 회관 화투판에서 상당시중을 한다./내게 쥐어진 패는 이제껏 따라지보다는 갑오더라고/침묵도 고역 아닌 기쁨이더라고/늘그막 회복기란 그렇다고”라는 영감의 말은 결국 시인의 말과 다르지 않다. 이런 깨달음을 통해 시인은 “하처미자”의 무위를 꿈꾸는 몸과 여전히 아픈 대지 위를 걸어가는 몸이 하나로 이어지는 시의 ‘자연’을 구현하기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6.
귀촌 이후에 쓰인 이번 시집에는 ‘내려놓는다’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도시적 삶의 강박”(「시인의 말」), “지난날 강직함”(「물도 때로는 불길이다」), 그리고 “끼고 살던 시도 잠시 내려놓”는다(「폭염」). 자연물들도 마찬가지다. 강과 나무, 폭포 등도 하나같이 무언가를 내려놓고 있다. 그렇다면 그 ‘내려놓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며, 그 ‘내려놓음’을 통해 어디에 도달하려는 것일까.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다 함부로 나대지 말고 그만해라
내리는 함박눈이 호두나무 고목의 어깨를 찍어 누르듯 어루만지고 품 안에 가로세로 두서없이 누운 논밭들을 더 깊숙이 안아 뉘는 소리. 내리는 솜눈들이 매무새 사납게 풀어헤치고 나대던 언덕 뒤 억새들도 제자리 붙들어 앉히는 소리. 궁둥짝 들썩이던 온 세상 뭇 것들 그렇게 제 자신 내면으로 내려가 들앉는데 뜨끈한 방 아랫목처럼 들앉아 혼자서 여럿이서 끼리끼리 귀 열고 수군대는 소리. 거기 대란 대치의 식식대며 들끓던 내 젊은 날 피도, 그만해라 참어라 아프기만 한 내 뉘우침도 다독여 주저앉히는 소리. 허공과 면벽한 애소나무들 누구처럼 제 팔뚝 끊어 내는지 눈발 선 산속 가득한 신음 소리. 즉설법문인가. 내 마음속 소리 죽여 듣는 함박눈 소리.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지. 함부로 나대지 말고 그만해라
―「단비」 전문
인용한 시 「단비」의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다”와 “그만해라 그만하면 됐지” 사이에 일어난 일에서 어떤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시인은 그 눈 속에서 다양한 소리를 듣는다. ‘어루만지고, 안아 뉘며, 붙들어 앉히고, 수군대고, 주저앉히는’ 소리들을 듣는다. 그 소리들을 들으면서 시인은 “즉설법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에 따르면 “내 마음속 소리”를 죽여야만 들을 수 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팔을 잘라 구도의 의지를 보였던 혜가의 단비를 떠올려 볼 때, “내 마음속 소리”를 죽이는 일은 단비와 같은 단호한 결심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볼 때, 첫 연의 “됐다”는 아마도 “식식대며 들끓던 내 젊은 날 피”의 소리이고 “뉘우침”의 소리인 “내 마음속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연의 “됐지”는 “내 마음속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들려오는 소리다. 그것은 함박눈이 들려주는 소리인 동시에 “내 마음속 소리”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자기를 책망하는 소리가 아니라 자기를 긍정할 수 있게 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은 함박눈이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제는 삶의 격정과 회환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됐지”는 달마가 혜가에게 말하는 소리일 수도 있다. 법이란 그렇게 요란하게 얻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시인은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의 젊은 날의 격정이 “함부로 나”댄 것이었음을, 요란스럽게 찾아 헤맨 것이었음을 말이다. 그것은 “삶에 막무가내 투정 부리며 채근당하며”, “들개처럼 나날이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길바닥에 코를 끌며 떠돌았”던 지난날이었으며, 이제 단호한 결심을 통해 내려놓은 뒤에야, “쥐 죽은 듯이/언 밥찌끼 흩어진 수챗구멍 속 죽은 듯이 숨은 시궁쥐처럼/숨어든 지금 이곳이/바로 언젠가 그 어느 곳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음을.(「이건 아니지 그럼」)
깎아지른 침엽 끝에 앞발굽 들고 곧추서서
그 낙타들이 들여다보는
거기
짐짓 지어 논 허공의 유르트 도관엔 웬 성명 불상의
푸르름이 우글우글 깊다 와글와글 고요하다
언젠가 몸에서 날은 저 유목의 본색들
그중엔 더러 낯선 이역의 낙타들도
섞여 섰다.
그래도 끼리끼리 낯익은 제 절조나 고행과
통성명도 하며 어울려
수수 십 년 한통속 힘겹지 않게 입신(立身)을 높이며 놀아야 할
유목하는 물의
대주(垈主),
왜 소나무는 늘 푸른가를
나는 본다
―「왜 솔은 늘 푸른가」 부분
그러나 ‘내려놓음’ 통해 깨닫게 된 ‘지금 여기’조차 시인이 닿아야 할 곳은 아니다. 시인은 소나무에서 물, 물의 낙타들의 험난한 행로를 본다. 소나무는 스스로 하나의 생명으로서의 나무인 동시에 물이 대지에서 허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생명의 길이기도 하다. 물의 낙타들은 나무의 헛물관 길로 행군하여, 하늘 한 부분에 닿는다. 거기는 “깎아지른 침엽 끝”이며, “앞발굽 들고 곧추서서” 들여다보아야 하는 백척간두의 끝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그 자리에, 어쩌면 짐짓 포기할 수도 있을 찰나의 자리에 유르트 도관이 있다. 유르트는 유목민이 사용하는 천막이다. 그 유르트에 “우글우글 깊”고 “와글와글 고요”한 푸르름이 있어, 물의 낙타들을 잠시 쉴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거기 안주하는 순간 유목은 끝나고 마는 것이다. 유르트는 다만 화성과 같은 것이다. 화성은 ‘화성유’에서 따온 말이다. 법화경에 따르면 보물을 찾던 무리들이 험난한 길의 도중에 힘들고 지쳐 돌아가려 하므로 길잡이가 잠시 쉴 수 있도록 신통력으로 만든 성이다. 그곳에 안주하는 순간 유목은 끝나고 만다. 그 유르트마저 허물고 다시 나서야 하는 것이다. “왜 소나무는 늘 푸른가를/나는 본다”에서 시인이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나무가 바로 대지와 허공 사이를 이어 주는 길이자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지도 나무도 허공도 모두 푸르다. 거기에는 어떤 분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이 ‘내려놓음’을 통해 도달하고자 한 자리는 이렇게 모든 분별을 넘어선 자리가 아닐까.
7.
그렇다면 시인이 꿈꾸는 ‘놀이’ 곧 ‘무위’의 밑자리는 어쩌면 모든 분별이 사라진 자리일 수 있다. 분별은 유위의 산물이다. 시인이 스스로 끝내 벗어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 세계에서 끝내 벗겨져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분별이다. 분별이 사라질 때, 차별은 차이가 되지 않고 낙차는 격차가 되지 않는다. “드넓은 하구에 와 편안히 안긴/강물인지 바닷물인지/너와 나 분별을 지운 질펀한 생각이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다”에서처럼 “너와 나”, ‘강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질 때(「강, 하구에 와서는」), “뭇 무리들 귀하고 더럽고/아예 구별 없이 타고 내리는/이것은 웬 시대의 마음”이 실현된다(「전동차 안에서」). 그것이 가능해지려면 “내가 사라지니 걸릴 것 아무 무엇도 없는/저 마음은/누구도 무슨 생각도/차별 없이 앉았다 가는 푹신한 좌석”이 되어야만 한다(「겨울 상수리나무」). 즉 ‘내’가 사라진 자리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이런 사유에 이르기까지 시인의 내면적 사투는 처절한 것이기도 했다. “탈출하는 성난 흰곰처럼 빙산 속 빙산 두어 마리가/몸 낮춰 웅크렸다 튀어 오르고/튀어 오르다 끝내 기진해서는 되미끄러져 내리는/그 짓을 수수 십 길 빙벽에서 쉼 없이 되풀이하는//콱콱 찍던 발톱 부러지고 견갑골도 어슷이 쪼개져서는/털썩털썩 붕괴하는/쉼 없이 그 짓으로 되풀이 되풀이 곤두박질 처박히는”(「할」)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 드디어 ‘나’를 버리는 과정에 이른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는 ‘분별하는 나’를 버리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시인은 늘그막에 찾아온 건망증조차도 반갑다. 그것은 몸이 스스로 ‘나’를 버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 ‘분별하는 나’의 의식은 몸의 산물이다. 경험과 기억이 바로 ‘분별하는 나’를 가능하게 한다. 늘그막에 이른 시인에게 경험과 기억은 더 이상 고착된 무엇이 아니다. “뇌 해마의 거죽에/잠깐 잠깐 앉았다 날아가는”(「건망증」) 것이 되어 버렸으며, 그리하여 “툭하면 소지품들 시도 때도 없이 손아귀 밖으로 도망치고/심지어는 입안에 든 밥알들도 어어 어어라 뛰쳐나와/식탁 밑 고꾸라지듯 굴러떨어지곤 한다./각자 물건들을 그렇게 서슴없이 방량이나 시켜 줄 일밖에 없는”(「이런, 나도 어치과인가」)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세월에는/어떤 내가 본래 나인가”(같은 시)라는 물음은 이미 대답이 내재된 질문이다. 그 대답은 ‘어떤 나도 본래 ’나’가 아니며, 나아가 ‘본래 나’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고통조차도 고통이 아니게 된다. “모처럼 먹통에도 열린 내 코는 얼마나 상쾌한가./벌름벌름 취한 삶은 얼마나 황홀인가”(「비염」)에서처럼 고통과 취함이 다르지 않고, 닫힘과 열림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삶은 게다가 어렵지도 않다. 시 「한 고전주의자의 독백」이 명쾌하게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그 삶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남의 파리한 등줄기 찍어 누”르지 않는 것이며, “괴춤을 부여잡고 공중변소 앞인 듯/긴 줄 선 방동사니들이 어쩌랴 바로 그런 게 삶이라고/서로가 서로에게 생각 비켜 주는” 단순함에 있다. 시인의 무위는 이렇게 소박한 자리에서 시작한다.
1
허공을 빗돌 삼아 앞에 뉘어 놓고
그가 새기고 써 내려가고자 한 최상승의 글 한 줄은 무엇인가.
변두리 없으니 한복판이 없고 내가 없으니 네 또한 없고
늙음 없으니 젊음이 없고 낡음이 없으니 새로움은 어디 있는가
깊음이 없으니 얕음은 어디 있는가
어리석어라
이미 누군가 허공을 그냥 저리 한 개 마음으로
써 놓았으니
무엇을 더 거기 새길 일인가.
2
마을 회관 앞 느릅나무 잎눈이
공중에
겨우내 피 듬뿍 찍은 붓끝을 중봉(中鋒)으로 쥐고 섰다
가끔 붓방아를 찧는다
뭘 허공에 쓰나
―「뭘 허공에 쓰나」 전문
그렇다. 허공에는 ‘변두리/한복판, 나/너, 늙음/젊음, 낡음/새로움, 깊음/얕음’이 없다. 거기 써 내려가고 싶은 “최상승의 글 한 줄”은 그렇다면 무엇일까. “이미 누군가 허공을 그냥 저리 한 개 마음으로/써 놓았으니” 거기에 무엇을 쓴들 그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다. 그러므로 결국 “최상승의 글 한 줄”은 영원히 쓰이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최상승의 글 한 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겨우내 피 듬뿍 찍은 붓끝을 중봉으로 쥐고” 서서 “붓방아를 찧는” 일 자체가 “최상승의 글 한 줄”일지도 모른다. 결국 쓰는 자도 없고, 쓰인 것도 없다. 아니 쓰는 자와 “최상승의 글 한 줄”은 이미 하나다. 이렇게 ‘분별하는 나’가 없을 때, 대지와 자연과 허공은 ‘나’와 함께, 서로의 몸이자 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밑자리에서야 “어느 모서리에 나사못으로 박혀 누군가의 녹물처럼 스며 나온 생을 꽉꽉 조이며 닦아”(「나사」) 주는 삶이 가능해진다.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자. 월창 거사와 김시습의 삶에는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평생을 바쳐 깨닫고 쓴 것을 죽음을 앞두고 모두 태워 버렸다. 무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물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따르는 ‘무위’는 ‘했으나 한 것이 없는 경지’다. 인위가 개입하지 않은 상태의 ‘함’이다. ‘놀다’도 마찬가지다. 한 것도 없지만 안 한 것도 없다. 두 사람은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진정한 ‘무위’는 ‘유위’와 같은 동시에 다른 것이다. ‘무위’는 ‘유위’를 모두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이 바로 ‘모두 태우는’ 행위가 아닐까. 자신의 삶 전체를 ‘놀이’ 혹은 ‘무위’로 만드는 것이다. 대지에도 자연에도 허공에도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을 때, 진실로 흔적이 남게 된다는 역설, 바로 그 역설이 꿈속에서 꿈 바깥을 사유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그러나 그 길은 도달하기 쉬운 길이 아니다. 「시인의 말」에서 귀촌 이후 시인은 “변함없이 작품을 썼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이제 다시 말하자, 시인은 귀촌 이후 시를 쓰면서 자신의 시를 ‘태우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타오르는 시의 불빛이 꿈속에서 꿈 밖으로 비쳐 나오는 시인의 눈빛 한 줄기는 아니었을까. 나는 첫머리에서 이 글이 시인의 눈빛 한 줄기를 만나는 길이라고 썼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다만 시인의 눈빛이 아니라 눈을 더듬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집을 읽어 나가는 동안 마음속에서 시인의 눈은 서서히 사라지고, 눈빛만 남았다. 기원 없는 눈빛 한 줄기, 그것이 시집을 덮으면서 내가 발견한 마지막 무엇이다. 그것은 어쩌면 ‘놀이’도 ‘무위’도 아닌 어떤 것일 수 있다. 후학의 어리석음으로는 끝내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이어서 다만 죄송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