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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칼을 들어 밑줄을 긋다

by 목관악기 2007. 11. 11.
       도대체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일까 생각한다.

       어쩌다 주경 야독이 되어버린  재수시절, 퇴근 후에 졸음을 참기  위
       하여,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하다가,  허벅지를 바늘로  콕콕 찔렀다
       는 둥,   칼로 손을  찍었다는 둥 했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는, 가서 칼을 하나 사서 갈았다는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차마 심하게 하지는 못하고, 칼을 들고는 팔목을 조금씩 그었다고했
       다. 처음에는, 그냥 껍질만 벗겨져,  너무 싱겁다 싶어서,  조금 세게
       눌러 그었더니, 짜릿한 아픔과 함께 몽글 몽글 핏방울이 배어올랐다
       그러는 순간, 정신이 화들짝 들고 졸음이 달아나길래, 그다음부터는
       졸음이 오기만 하면, 칼을 들고 팔을  그어댔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는 그것도 만성이 되어 버려,   그어도 효과가 없었고, 어느
       날 짜증이 치민 그는, 평소보다 더 센 힘으로 팔을 눌러 그었다.뭉클
       하게 흘러나오던 피와 아픔, 신기하게도 그런 다음부터는 잠이 오지
       않았고. 적어도 하루 밤쯤은 무리없이 샐 수 있었다는 거였다.  그날
       부터는  더 이상 손에 칼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 한 후,
       중간고사 시험 준비를 하다가 다시 졸음이 쏟아지길래, 다시 커터칼
       을 들고 팔을 그어보려고 했을 때, 그는 자신이 했던 짓이 얼마나 끔
       찍한 짓이었는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도무지 다시 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칼을  던지며,  스스로에게 미친 놈하고 중얼거렸다고 했다
       내게 이야기를 하던 순간에도 그는, 몸서리를 쳤었다.정말 미쳤었어


       아마 그렇게까지 하게 된 것은 그의 절실함이었을 것이다.   창 밖의
       폭우를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한다. 나는 지금 문학에 삶에 절실한가
       내가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란,  아마 그 절실함일 것이다. 도무지시
       가 써지지 않는 밤. 친구의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절실함에 대해  절
       실하게 생각해 본다. 폭우다. 내게는 우산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