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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산문, 幻

방명록을 삭제하다

by 목관악기 2007. 11. 11.

          아는 후배가 홈을 이전했다. 예전에는 네이버 마이 홈에 세 들어
          살았는데, 이제는 정말 아, 홈페이지구나 할 정도로, 참 좋다. 컨
          셉은 검은 바탕에 흰 글씨, 예전에 그런 게시판을 갖고 싶다고했
          었는데, 내가 먼저 도둑질 해버린 셈이었지만, 가보니, 이런,,,내
          가 오히려 흉내낸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잘 꾸며 놓았다. 그는   시
          쓰고 기타를 친다. 기타는 거의 프로 급이며, 시는 내가 쳐다  보
          기 까마득하고, 게다가 철학까지 한다. 궁금하다면, 홈 주소를가
          르쳐 줄 수도 있지만, 그는 약간 오만해서 귀찮아 할 지도   모르
          므로, 주소는 여기 남기지 않는다. 인연이 닿으면 볼 수 있을  것
          이다.

          이전 홈에 가보니 새로 바뀐 홈 주소 소개와 방명록만이 남아 있
          었다. 방명록에는 내가 그에게 주절주절 써댄 글들이 있었고, 갑
          자기 제 대상을 잃어버린 글들이 시체처럼 둥둥 떠 있었다. 물론
          그 글들이 제 주인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시절에도 그  주인에
          게 가 닿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가   닿았건
          그렇지 않건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것은 동시에 나 자신
          에게 말해진 것이었고, 그로써도 충분히 소신공양 하였으므로,
          다만 갑작스런 한쪽의 긴장이 무너졌을 따름이고, 나는 내게서
          나온 말들을 다시 수거하였다. 대부분, 이미 재로 화해   있어서
          단 한 번의 클릭으로도 쉽게 그것들은 풍화되었다.

          그렇게 풍화시켜 나가던 중, 나는 거기서 내 말의 뼈 하나를  건
          져 올릴 수 있어서 기뻤다. 앞 뒤의 살집은 모두 바람으로 화 했
          으므로 그 뼈를 다만 여기에 옮겨 심는다.  '허영과 싸워볼 생각
          이야, 내게서 허영을 뺀다면 아마 나는 바이러스만해질거야.'
          이말은 정확히. 주중 며칠의 여유를 얻어 도서관 서가와 술집을
          헤메면서 얻은 생각과 일치하고 있었다. 처음 그 말을 그   후배
          의 홈에 썼을 때와 지금 사이에는 짧게 잡아도 몇 달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아, 부끄러워라. 이제는 잊지 않겠다. 남
          은 생을 허영을 줄이는 데 바쳐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