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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용국 시인 평론, 書架

고형렬, 경호원k 평문

by 목관악기 2007. 11. 11.


       경호원 K

                      고형렬

       30대 경호원은 늘 빠르고 간결하다
       경호원의 철학은 ‘간단’이다
       그의 걸음걸이는 늘 한쪽으로 기울었다
       경호원 몸속엔 권총이 있다
       그 권총이 자신의 유일한 노리개다
       잠자리에서 그는 작은 여자에게
       검은 권총을 만져보라고 꺼내 보인다
       손바닥에 들어오는 독일제 권총
       총알은 약실에 박혀 있다고 말한다
       한 방이면 끝이라고 중얼거린다
       그럴 때, 권총은 남자 같다
       그는 그녀 존재를 잊지 않는다 그에게
       그녀는 울타리에 떠오르는 아침 해다
       여름 내내 향수내가 은은하다
       경호란 순식간의 본능적 감각이며
       상대의 화약내를 먼저 맡는 후각이라고
       노을을 본다, 피 같고 꽃 같다
       그는 위기와 경계가 있는 잠자가 좋다
       아니 그 속에 숨은 노란 딱지의 실탄
       어떤 불립문자나 암호 같은
       그는 그 생각을 하면 정말 경호원 K의
       존재를 깨닫는다, 문득문득
       그는 경호원을 무지개처럼 쳐다본다
       매일 저녁, 나무처럼 기다리면
       인생은 아침 같고 저녁 같다는 걸 안다
       여자는 그러나 행복하다
       항상 립스틱을 하고 머리를 손질한다
       머리를 짧게 잘라 귀를 내놓은 그녀
       뇌리를 지나가고 있는 진행형의 총알
       때론 지루한 장난감이라도
       경호원의 생은 권총의 무게감이 있다
       한 공간을 뚫고 가는 단 한 방의
       경호원 K의 마지막 총알을 생각해본다
       경호원 K의 방아쇠를 생각해본다
       경호원 K의 권총에선 별 냄새가 난다

                                    ― <현대문학>,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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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한용국


타자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다는 것은 실상은 자신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에 다름 아니다. 레비나스가 말했던 것처럼 타자와의 윤리적 관계를 실현을 위해서는 우선 타자의 삶(얼굴)에 대한 전면적인 긍정이 필요하다. 즉 ‘환대로서의 주체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우선 주체를 텅 비우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타자를 응시하는 것, 그럴 때 오히려 타자 속에 자신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고형렬의 시 ‘경호원 k’는 경호원의 삶을 들여다 본다. 경호원이라는 직업에서 우리는 가장 먼저 절제된 행동, 신속함, 조력자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물론 검은 양복이나 선글라스 등이 부수적으로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 시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먼저 ‘빠르고 간결함’, ‘간단’이라는 이미지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는 경호원의 내면으로 곧장 침투한다. 그 경호원의 내면(품)에는 ‘권총’이 있다. 그 권총은 경호원의 노리개인 동시에 ‘그녀’에게 내보이는 은밀한 자부심이며 자기의지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것이다. 약실에 박혀있는 ‘총알’로 ‘한 방이면 끝’인 권총은, 시에 드러난 것처럼 위기와 경계감을 유발한다. 그 총알은 ‘불립문자’나 ‘암호’로 비유된다. 그렇다. 총알은 총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사물이다. 해독될 수 없다. 발사되기 전까지는.

경호원의 삶은 그러나 그녀의 삶에 밀착되어 있다. 그는 ‘그녀’를 경호하는 것일까. 경호원에게 ‘그녀’는 떠오르는 아침해와 같은 존재이며 여름 내내 은은한 향수내를 풍기는 동반자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즉 경호는 그녀를 지키기 위하여 ‘본능적인 감각’으로 ‘상대의 화약내를 먼저 맡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나무처럼 기다린다’ 그럴 때 인생은 ‘아침같고 저녁같은’ 세월이 되어있다. 시 속에서 그와 그녀는 약간은 혼란스럽게 변주되지만 부부같은 동반자적 관계의 음영을 드리우고 있다. 이렇게 읽어갈 때, 경호원의 생은 삼십대 남자의 생과 겹쳐진다. 삼십대의 삶이란 실제로 그렇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정말은 자신의 가족을 지키는 일이 아닌가. ‘위기와 경계가 있는 남자’의 삶이 삼십대 남자의 삶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시에서 모든 경호원을 괄호 쳐 버리면서 읽는다. 경호원이 괄호 속으로 사라지자 마자 괄호 속은 텅 비어 버린다. 그러자 괄호 속에서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하나 둘 씩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들은 모두 ‘경호원’이고 ‘k'이고, ’그‘이다. 그리고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는 그녀가 있다. 정말 그녀의 머리 속으로는 ’총알‘이 지나가는 중이다. 한 존재가 한 존재에게 던져진 것. 타인의 시간이 함께 자신의 몸 속으로 흐르고 있는 것. ’경호원 k'의 마지막 총알은 어쩌면 이미 쏘아진 총알일 수도 있다. 내 몸 속을 관통해 가고 있는 타인의 생에서, (         ) 속에서 별냄새가 피어 오르고 있다.